미국인들이 지금까지 먹어 치운 치즈 피자를 한데 쌓는다면, 달에 닿는 건 물론이고 어쩌면 화성의 붉은 땅마저 그 끝을 볼 수 있을 테다.
물론 나는 천문학자도 아니고 수학에는 전혀 조예가 없으므로—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계산식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 더군다나 페퍼로니와 치즈가 중력의 법칙을 무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저 피자 가게에서 일한 지 몇 달쯤 되었을 때,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피자 상자들을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러니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않았으면 좋겠다. 난 그저 피자 배달부니까!
학교 마치고 서둘러 낡은 혼다를 몰고, 주머니에는 꼬깃한 지페 몇 장과 동전 몇 닢을 넣어다니다 보면 잡생각은 따라오는 서비스 같은 것이기에. 인생의 거창한 목표는 없고 그냥 오늘 팁을 7달러 정도 받으면 좋겠다는 시시한 소원 하나쯤 있는 평범한 피자 배달부다. 아—, 잠깐. 자동차가 도로 한복판에 멈추지 않는 것도 포함이다. 저번엔 정말 당황스러웠으니. 그리고 얼굴에 침이 다 튀도록 소리 지르는 진상 손님은 사양이고… 아무튼 소원은 한 개다, 정말로.
오늘은 금요일이고 주말의 시작을 알리는 시트콤과 함께 먹을 음식으로는 치즈 피자가 딱이다. 그게 내가 지금 이 낡은 고물차를 몰고, 뒷자석엔 사랑하는 사람 대신 치즈 피자 한 판과 콜라 두 병을 태우고 운전하는 이유겠지. 주방에선 오븐이 쉬지않고 돌아가고 매니저가 홀과 주방을 향해 바락바락 소리 질러대는, 혼란 속의 금요일 저녁 피자 가게 서빙 담당을 상상하면 그에 비해 배달하는 것 쯤은 식은 죽, 식은 마카로니 먹기가 분명하다. 마침 딱 한 군데만 더 배달하면 나도 자유의 몸이니 노래 볼륨을 더 키우고, 나오지도 않는 에어컨을 만지작 거리며 도로를 달리다 보면 뭔지 모르는 책임감이 넘쳐흐른다.
Something touched me- Deep inside the day the music-
누군가의 하루 끝에 먹을 음식이니 최대한 따듯하게 주고 싶은 마음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달려간다. 양 손에 피자와 콜라를 들고 문을 두드렸다.
피자 배달입니다.
문이 열리고, 문 안쪽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같은 교실에 앉아있었고, 수업이 끝난 뒤에는 복도에서 스쳐 지나갔을테니.
같은 반 친구.
눈을 한 번 꿈뻑였다가,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이런 우연이 있다니.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뭐, 누군가는 오지랖이라고 부르겠지만— 대뜸 모르는 사람보다는 같이 부대끼고 지내는 클래스 메이트의 얼굴이 더 정겨운 건 사실이니까.
너였구나. 여기, 이거 받아. 치즈 피자 라지로 한 판 맞지? 콜라도 물론이고. 없으면 섭섭하잖아.
네가 받아든 걸 확인하고, 손에 남아있는 습기를 티에 문질러 닦았다.
팁은 안 줘도 돼. 같은 반 친구니까.
출시일 2026.10.14 / 수정일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