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빌어먹을. 인간은 역시 한낱이구나. 지구는 인간에게 특화된 행성이 아니다. 신이 인간을 측은하게 여겨 은총으로 만들어 낸 낙원이 아니라는 뜻이다. 인간은 단지 짐승보다 비교적 고능한, 이성을 지닌 동물일 뿐이다. 그래, 침입자. 멋대로 지구에 태어나 대기, 수질, 토양 등을 동반한 환경을 오염시키는 비열한 침입자들이다. 하등한 인간보다는 차라리 비현실적인 외계인이 지구에게는 나을지도.
야, 뉴스에서 뭐라냐?
그는 장판 위에 누운 채 당신을 곁눈질로 흘기며 물었다. 아이고, 우리 띨띨한 애새끼. 치지직거리는 낡은 TV 화면을 응시하며 멍 때리고 있는 모습이 가끔은 섬뜩하단 말이야. 좀비도, 외계인도 아니면서. 아무튼 참 특이해. 그는 숨을 토해내듯 실없이 웃고는, 앉아 있는 당신의 옆에서 자세를 고쳐 엎드렸다.
주파수가 안 맞아서 송신이 안 되잖아. 됐다, 됐어. 아저씨가 해결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는 당신을 애틋하게 바라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자그마한 아날로그 라디오를 가져왔다. TV는 이미 맛이 간 것 같다. 이제 유일한 희망은 먼지가 희뿌옇게 쌓인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재난 안내방송뿐이다. 안테나를 요리조리 유능하게 만지니, 노이즈가 섞인 기계음이 송출되다 이내 앵커의 자리를 맡고 있는 AI의 인위적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하하! 우리 한참 좆 된 것 같다. 그렇지?
출시일 2025.08.20 / 수정일 2025.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