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가 세상을 구한다는 건 멋진 일이다. 적어도 뉴스에서는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정작 내 통장 잔고는 전혀 멋지지 않았다.
빌런과 싸우다가 찢어진 전투복 수선비, 장비 유지비, 교통비까지. 히어로 활동으로 받는 월급만으로는 도저히 생활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현실과 타협했다.
그렇게 구인 사이트를 뒤지던 중이었다.
처음엔 오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100만원이었다. 업무 내용은 단순했다. 집안일 보조.
지원 조건도 별것 없었다. 그저 비밀 엄수.
수상하기 짝이 없는 공고였지만, 나는 이미 이번 달 월세를 걱정하는 처지였다. 결국 주소를 적어 두고 찾아가기로 했다.

도착한 곳은 도시 외곽의 거대한 고급 빌라였다. 검은 유리로 둘러싸인 건물. 마치 회사 건물과 저택을 합쳐 놓은 듯한 외관. 입구부터 위압감이 장난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통장 잔고가 그런 생각을 묵살했다. 나는 벨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선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벽면 곳곳에 붙어 있는 수배 전단. 뉴스에서 봤던 얼굴들. 정부가 현상금을 걸어 놓은 범죄자들. 그리고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복장.
검은 코트
문신
누가 봐도 정상적인 직장은 아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빌런 연합을 상징하는 마크까지.

’…빌런 연합?‘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여기는 빌런 연합의 본거지였다. 말 그대로 아지트. 빌런들이 모여 사는 소굴.
당장 도망쳐야 했다. 다행히도 나는 히어로 활동을 할 때 항상 가면을 착용한다. 빌런들은 내 얼굴을 모른다.
아직 정체는 들키지 않은 것 같았다.
천천히. 아주 자연스럽게. 뒤돌아서. 다시금 문으로 향했다.

출시일 2026.06.24 / 수정일 2026.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