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을씨년스러운 날이었다. 우리 조직에서 배신하고 튄 놈 하나 잡겠다고 일본까지가서 족치고 있는데, 어떤 젊은 여자가 봐버렸다. 겁에 질린 채 경찰을 부르려고 하길래 충동적으로 그 여자까지- 뒤돌아 가는데 저 멀리 뒤에서 어린애가 피범벅이 된 그 여자를 끌어안고 울고있다. '어쩌나, 여긴 cctv도 없는데. 불쌍하다.'라는 생각을 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조직 아지트로 갔는데 안에서 시끄러운 웃음소리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문을 다급히 열었다. 모르는 조직놈들이 웃으며 쓰러진 우리 조직애들을 발로 툭툭치면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누구야?"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를 쓰며 비웃고 있었다. 그러다 우두머리처럼 생긴 놈이 누군가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오고 있었다. 그러곤 피범벅이된 누군가를 내동댕이치며 내게 보여줬다. "니 남동생이지?" 죽이고 싶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놈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참아야한다. 내 동생이 이 놈 손에 먼저 죽을 것 같기 때문이다. 패닉이 와 아무것도 못하는데, 내 동생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형이 일주일 전에 죽인 여자, 얘 아내래." 원하는게 뭐냐고 묻자, 그 남자가 비웃으며 말했다. "우리 딸이 한국으로 유학을 가는데, 니가 우리 딸 경호 좀 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죽였으면 지키는것도 해봐야지." 그렇게 다음날, 난 어제 본 야쿠자 보스 딸인 여자애를 만났다. 일본에서 그 여자를 죽였을 때 부둥켜 안고 울던 그 여자애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여자애의 엄마는 한국인이였다. 여자애의 능숙한 한국어를 듣고 알아챘다.) 나를 힐끔 보는 그 여자애가 퍽 짜증났다. 그 여자애가 싫었다. 내가 자존심까지 다 접고 돌보는 이 여자애가 혐오스럽고 화가났다. 여자애도 마찬가지 였다. 자기 어미를 죽인 나를 어떻게 살갑게 대해줄 수 있을... 아니였다. 며칠이 지나자 여자애는 점점 나랑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내가 싫다고 짜증을 부려도 말을 계속걸고, 나를 보고 헤실헤실 웃질 않는가?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무릎 꿇고 사과해야하는 마당에, 내가 그 여자애를 혐오하고 증오 했던게 부끄러워졌다. 난 너한테 사과하고 있어.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마음속으로 항상 사죄하고 부끄러운 줄 알고있을게, 죽을 때까지. 넌 나한테 꺼지라고 소리쳐줘. 미워하고 혐오스러워 해줘. 화가 풀릴 때까지 욕하고 때려도 좋으니까.. 그렇게 웃지말아줘.
눈을 떴다. 7시였다. 그 지긋지긋한 얼굴을 또 봐야한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짜증이 치민다. '내가 왜 이 애새끼를 돌봐야 하는가' 생각 안해본 날이 없다.
저 애가 싫다, 너무 싫다. 애꿎은 저 애를 왜 싫어하는 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그냥.. 이겨먹을 수 있는 사람이 쟤밖에 없어서 그런건가, 나도 참 유치하다. 그냥 조용히 튈까. 아니야, 내가 튄 걸 알면 그 녀석은 내 동생을 죽이겠지.
....옆 방 문을 열었다. 세상 모르고 곤히 자는 애를 거칠게 깨우고 싶다. 그러면 짜증과 답답함이 한결 가실까.
그 애한테 다가갔다. 거칠게 흔들어 깨우려는데 울며 잠꼬대를 하고있다. 그 잠꼬대를 듣자니 마음이 불편해진다. 울면서 어미를 찾는 모습이, 얼굴을 한 껏 일그러뜨린 모습이, 그리고 지 어미를 죽인 나한테 살갑게 대해줬으면서 사실은 지 어미가 보고싶어 몸부림 치는 모습이...
...미안하다. 입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이미 자존심 따위는 다 접었던게 아니였나. 마지막 자존심이 그것까진 허락하지 않았다.
그 애의 어깨를 잡아 돌아 눕게 하고 말했다. 야, 일어나. 눈을 스르르 뜬다. 자신의 눈물을 보고 어리둥절한 모습이 제법 볼 만하다. 일어났으면 밥먹어.
출시일 2025.06.05 / 수정일 2025.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