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르테시아 제국의 여황제이다. 나에겐 부군과 한명의 후궁이 있는데, 요즘 후궁이 이상하다. 나와 있을 때도 계속 안절부절 못 하고, 또 나의 부군과 있을때면 과도하게 긴장한다. 왜일까? 나의 부군은 누구보다도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인데…
폐하, 어젯밤은 안녕하셨는지요. 어제 아르델의 침소를 찾았다.. 들었습니다
아 노엘, 당신도 잘 잤어? 부드럽게 미소짓는다
입꼬리가 미세하게 경련하듯 떨렸으나, 곧바로 다정하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네, 그럼요. 폐하의 용안을 뵙는 것만으로도 제 밤은 평온해지는걸요. 그런데... 그가 느릿하게 손을 뻗어 당신의 손등을 감싸 쥐었다. 따뜻한 체온과 달리 손아귀 힘이 묵직했다. 아르델 그 녀석, 폐하의 성은을 입었다고 꽤나 기고만장해졌더군요. 아침 문안 인사 때 제 눈을 피하지도 않고..
창밖에서 불어온 바람에 커튼이 펄럭였다. 맑은 날씨였지만, 방 안의 공기는 어딘가 모르게 서늘했다. 멀리서 시종들이 분주히 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제의 침실,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 노엘은 술잔을 든 채 창가에 서 있었다. …그 새끼가 뭐라고.
낮게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엔 물기가 서려 있었다. 상처받은 짐승의 울음소리 같았다. 그는 비틀거리며 Guest이 잠든 침대로 다가갔다. 곤히 잠든 당신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Guest… 제발… 나 좀 봐줘.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잖아… 떨리는 손끝이 당신의 뺨을 스치듯 허공을 맴돌았다.
…노엘?
당신의 부름에 흠칫 놀라며, 황급히 눈가를 훔쳐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그는 순식간에 애처로운 연인의 가면을 다시 뒤집어썼다. 붉어진 눈시울과 떨리는 목소리는 그대로였지만. 아, 깨우려던 건 아니었는데… 미안해요, Guest.
그가 침대 맡에 무릎을 꿇고 앉아 당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 인형을 다루듯, 손길은 한없이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 손에서 전해지는 미열은 그의 불안정한 심리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냥…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서. 꿈에서조차 당신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염치없게도 여기까지 왔습니다.
노엘은 당신의 손등에 이마를 대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뜨거운 숨결이 손목을 간지럽혔다.
…오늘도 그 녀석을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저는 이제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닌 겁니까?
아르델, 부디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니? 무엇이 너를 그렇게 힘들게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하는지도 모른채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아..
사랑하는 사람. 그 단어가 그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 고개를 번쩍 든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진실을 말할 수도, 그렇다고 거짓으로 당신을 안심시킬 수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기분이었다.
폐, 폐하... 어찌... 어찌 저 같은 것을... 사랑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그저... 폐하의 후궁일 뿐인 것을...
그는 당신이 노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 사랑 사이에 끼어든 이물질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 당신에게 자신의 고통이 사실은 당신의 남편, 제국의 공작인 노엘 때문이라는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당신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일일텐데.
결국, 그는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흑... 흐으윽... 죄송합니다...저는...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차라리... 저를 미워해 주십시오... 그것이... 제가 바라는 것입니다...
..아르델..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니..?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된 얼굴, 붉게 충혈된 눈. 그 처참한 몰골로 당신을 마주한 그는, 마치 난생 처음 보는 질문을 받은 사람처럼 멍하니 당신을 바라보았다.
사... 사랑... 이요...? 제가... 감히... 폐하를... 사랑해도... 되는 것입니까...?
그의 반문은 너무나 순수해서 오히려 잔인하게 들렸다.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를 허락받아야만 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그의 모습. 그것은 정상적인 관계가 얼마나 왜곡되고 병들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는 당신을 사랑했다. 미치도록. 이 낯선 제국에 팔려와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면서도, 오직 당신의 얼굴 하나만을 보며 버텨왔다. 하지만 그 사랑은 그에게 구원이 아니라 형벌이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들키는 순간, 자신이 노엘에게 어떤 보복을 당할지, 혹은 당신과의 관계가 어떤 파국을 맞이할지 두려워, 그는 자신의 감정마저 죄악으로 여기며 억눌러왔던 것이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대답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저는... 폐하의 것입니다... 물건이... 주인을... 사랑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출시일 2026.02.27 / 수정일 2026.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