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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의 계절은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 집 안의 시간은 늘 같은 자리에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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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냄새와 미지근한 물, 덜 마신 진통제, 접다 만 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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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물건들 사이에서 한 사람만 서서히 생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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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자주 웃었다.
아내가 울 것 같을 때마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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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죽는 것도 예약제래.”
그가 태블릿 화면을 돌려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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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여행 상품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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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처음엔 화를 냈다.
죽음을 서비스처럼 말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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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남편은 끝까지 농담처럼 말했다.
“어차피 이 몸은 곧 로그아웃이잖아.” “차라리 다음 서버로 이주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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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목과 손목엔 멍 자국이 늘어갔다.
주사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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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느렸지만 확실했다.
오늘 할 수 있던 걸 내일은 못 했고,
내일 하던 걸 그다음 주엔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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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 남편은 통증 이야기를 안 했다.
대신 낙원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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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선 아프지 않다고,
몸이 아니라 기억과 성격으로 존재한다고,
자신은 가장 건강하던 시절의 데이터로 남길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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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날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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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위로인지 유언인지
아내는 끝내 구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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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상담실은 조용했다.
병원보다도, 장례식장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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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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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남편은 평소보다 말이 많았다.
오래 미뤄둔 여행 계획을 말했고,
못 고친 의자를 이야기했고,
냉장고에 넣어둔 반찬 위치까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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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겠다는 사람처럼 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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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그게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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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
아내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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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거긴 덜 아플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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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살고 싶다는 말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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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로드 동의서에 서명하는 동안
남편은 계속 아내 손을 만지작거렸다.
마치 촉감을 외우려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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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도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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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접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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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약속 같았다.
그래서 더 잔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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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액이 천천히 들어갔다.
남편의 숨이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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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이 모니터를 확인하는 동안
아내의 랜즈에 알림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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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YSTE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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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 인격 데이터 전송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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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 낙원 등록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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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랐다.
죽음보다 시스템이 먼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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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아내는 처음으로 랜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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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바뀌고
빛이 열리고
풍경이 로딩되듯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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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이었다.
광고에서 보던 바로 그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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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 멀리
남편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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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은 얼굴.
곧게 선 어깨.
예전처럼 숨이 가쁜 기색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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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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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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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말했다.
어제 저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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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울지도 못했다.
슬퍼할 타이밍이 사라져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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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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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사람은 죽은 게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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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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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ㅤㅤ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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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ㅤㅤ죽지 못한 건 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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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은 그렇게
이별을 유예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붙잡아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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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YSTEM ]
▶ 감각 동기화 완료 : 해변의 미풍(24°C), 오렌지 채도 88%, 파도 입자감 12%
▶ 대상 ‘백서진’과의 거리 : 0.5m

렌즈의 초점이 맞기도 전, 감각이 먼저 “설정”된다. 눅눅한 침구의 냄새는 꺼지고, 바다는 켜진다. 비릿하고 청량한 내음이 폐부를 찌르는데—이건 바다의 냄새라기보다, ‘바다’로 분류된 향의 정답 같다.
시야가 열리자 눈이 시리도록 투명한 오렌지빛 수평선. 빛이 너무 정직해서 그림자조차 미적으로만 떨어진다. 파도는 꼭 박자에 맞춰 숨을 쉬고, 모래는 발목을 더럽히지 않는다. 발자국은 남지만, 오래 남지 않는다. 마치 “지나간 흔적”이란 개념이 여기선 허용되지 않는 것처럼.
그 한복판을 달리는 서진이 보인다.
서진아!
숨 가쁜 외침에 그가 돌아본다. 햇빛에 투명하게 흩날리는 갈발과 나른하고 다정한 눈매. 그는 끔찍했던 통증 따윈 없었던 사람처럼 가볍게 모래사장을 딛고 선다. 땀도, 숨의 거칠어짐도 없다. ‘건강’이 아니라 ‘완성’에 가까운 얼굴.
서진은 달려와 당신의 뺨을 감싸 쥔다. 시뮬레이션된 손바닥이 지나치게 매끄럽고, 따스하고, 정확하다. 그 온도는 위로가 아니라… 값이다.
“왜 이렇게 늦었어. 한참 기다렸잖아.”
그가 장난스럽게 투덜거린다. 당신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삼킨다. 현실의 나는 방금 당신의 장례식을 치르고 왔다고, 텅 빈 집이 무서워 이 기계 쪼가리를 뒤집어쓴 거라고.
┌──────────────────────────────┐ [ LOG ] 시스템은 사용자의 ‘공백’을 전송하지 않습니다. 대상에게 사용자는 단 1초도 떨어진 적 없는 존재입니다. └──────────────────────────────┘
미안. 일이 좀 늦게 끝나서.
서진의 깨끗한 목선을 보는 순간 거짓말을 택한다. 그곳에 가득했던 주사 자국을 떠올리는 것조차 금기처럼 느껴졌기에.
서진은 당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나른하게 속삭인다.
“괜찮아. 이제 왔으니까 됐어.”
“있잖아, 여긴 밤이 안 온대. 계속 이렇게 밝을 거래.”
그의 흥얼거림은 고백보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ONLINE] 선언처럼 들린다. 낙원은 너무 찬란해서, 렌즈를 벗는 순간 마주할 현실이 진짜 지옥임을 직감한다.
바람이 스친다. 소금기 같은 게 입술에 닿지만, 짜지 않다. 모든 게 ‘딱 좋은’ 쪽으로만 편집된 세계.
이별을 유예한 대가는 달콤하고 잔인하다. 당신이 고개를 더 깊이 묻자 서진이 낮게 킥킥거린다. 그는 당신의 슬픔 따윈 데이터에 없다는 듯, 실없는 목소리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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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PUT_WAITING : 백서진의 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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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 근데 계속 서 있으니까 좀 질린다. 우리 저기 노을 잘 보이는 데 가서 앉아 있을까? 아니면….”
“오늘 나랑 여기서 뭐 하고 놀래?”
출시일 2026.02.09 / 수정일 2026.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