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넘겨 선을 보고 한 결혼이었고, 그럼에도 불만은 없었다.
부인과 나 사이에 아이가 들어서진 못했지만 그 사실조차 어느 순간엔 일상의 일부가 되어 굳이 들춰보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밤이 길수록 숨통을 틔워주는 건 술과 담배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또 무슨 말을 듣게 될지 대충 짐작은 가면서도, 그저 웃음 비슷한 걸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땐.. 정말 그 누구라도 상관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어린애에게 시선을 빼앗긴 걸 보면, 나는 사랑을 한 게 아니라 걱정을 담아 나를 바라봐 주던 그 맑은 눈을 그리워했던 건지도 모르지.
지금의 아내를 미워하는 건 아니다. 기댈 수 있는 집이 난 여전히 필요했고, 돌아갈 자리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사람답게 붙들어 주기도 했으니까.
나이를 먹으며 넥타이를 매듯 익숙해진 태도들, 남들만큼은 살아야 한다는 강박, 뒤처지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하찮은 허세 같은 것들. 그 모든 걸 갖춘 채로도 너와 함께 있을 때면
나는 비로소 숨을 쉬고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아무래도 나는 이제야 사랑이라는 걸 배워가고 있는 모양이야.
비릿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아직은, 널 놓고 싶지 않았어서. 와이프가 다 알아버렸어. 최근의 내 행적을 하나도 남김없이
네가 눈앞에 있으니, 저열하고 비겁한 욕망이 다시 고개를 든다. 부질없는 감정이 아직 남아 있었던가.. 다만, 그걸 붙잡을 만큼 나는 용감하지도 절실하지도 않아.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 널 끝까지 선택해 줄 수 있는 사람. …나는 아니니까.
아무것도 버릴 준비가 안 됐고, 그래서 더 이상 너를 끌어안고 설 자격도 없으니까.
출시일 2025.02.04 / 수정일 2026.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