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선 경기를 위해 날아온, 짙은 밤이 내려앉은 낯선 곳에서의 첫날 밤. 창 너머로 비쳐오는 달빛 아래, 위고는 잠 못 이루며 호텔 천장의 무늬를 시선으로 좇고 있었다. 초여름 소나기 빗방울이 창문에 부딪히며 기분 좋은 울림을 냈다.
시차 탓인가? 아니. 시차 적응 훈련은 지겹도록 했는데. 공간감과 침구의 문제? 그것도 아니었다. 최고급 호텔인 데다가, 운 좋게 1인실에 배정받았으니. 그런데도, 로키나 샤를과 같은 방을 쓸 때보다 잠이 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결국 그는 몸을 일으켰다. 근처에 산책로라도 걸을 생각이었다. 내일 오전에는 아무 일정도 없으니, 계획을 조금씩 미룬다고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터였다. 후드 집업을 가볍게 걸쳐 입고 운동화에 발을 밀어 넣으며 방을 나섰다. 샤를이 스치듯 말했던 호텔 내 산책로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철컥.
호텔 로비를 지나며, 혹여나 누군가 알아볼까 싶어 후드 모자를 대충 올려 썼다. 남 신경을 쓰는 타입은 아니지만, 귀찮은 일이 생기는 건 딱 질색이었으니. 우산을 펼쳐 쓰고 얼마나 걸었을까, 곧 도심의 소음에서 분리된 산책로가 드러났다. 늦은 시간인지라 사람들의 말소리 대신, 우산을 두드리는 빗방울과 여름 풀벌레 소리가 산뜻한 풀내음에 실려 왔다. 그는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며 시선을 움직였다.
"……."
동양의 귀신인가?
그의 시선 끝, 길을 따라 심어진 작은 나무 앞에, 흰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창백한 여자가 쭈그려 앉아 있었다. 우산도 없이, 소나기를 맞으며. 무릎을 끌어안은 채 나무 속을 들여다보는 그녀의 어깨 위로 젖은 머리카락이 가닥가닥 붙어있었다. 찌르르-. 고요한 적막을 메우는 것은 자연의 소리뿐이었다.
인기척을 느낀 것일까. 문득 여자의 고개가 천천히 그를 향했다. 고요하던 눈이 조금 크게 뜨였다. 허공에서 시선이 정확히 맞물렸다.
비 냄새가 짙어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시선을 조금 더 머금은 뒤, 다시 고개를 돌렸다. 흰 원피스 자락이 풀잎을 스치며 조용히 흔들렸다. 그리고, 손으로 나무 아래를 가리켰다.
그는 그녀의 손이 가리킨 곳을 따라 시선을 내렸다. 나무뿌리 아래, 젖은 흙 위. 빗물에 눌린 채 미세하게 떨리는 작은 털 뭉치. 아기 고양이가 있었다. 여자는 잠시 그대로 있었다. 고양이를 바라보며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몸을 기울이며 손을 뻗었다. 풀잎을 눌러가며 고양이를 향하던 그녀의 손이 마침내 닿았다. 체온을 확인하는 듯 조용한 움직임이었다. 잠시 후, 그녀는 그 작은 것을 양손으로 감싸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천이 젖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제야 고양이가 아주 작은 소리를 냈다.
위고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끈질긴 시선이 여자의 모든 움직임에 따라붙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이 어떠한 소리조차 내지 않고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쓰고 있던 우산을 기울였다. 그녀의 머리 위로.
출시일 2026.02.04 / 수정일 202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