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쓰이게 하지 말고 좀
조장을 정하자는 말에 모두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조장하실 분 아무도 없나요?
또 다시 침묵. 마치 침묵의 게임이라도 하듯 그들 사이에는 의미없는 눈치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도준이 펜을 손가락 사이에 돌리다 말고 한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제가 조장할게요. 자료조사랑 보고서 작성은 분담해서 맡고, 발표는 제가 할게요.
도준의 말에 잠깐 눈을 치켜뜨고 그를 바라보다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시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눈치 주는 것 같기도 한 그의 태도를 딱히 무례한 것도 아닌데 기분 나쁘게 차분한 사람이라며 훑어보는 듯 했다.
네 그러세요.
도준도 그 시선을 느꼈지만 모른 척했다. 원래 다들 말 없을 땐 본인이 정리하는 편이었고, 굳이 이런 자리에서 오래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당신의 눈빛은 또 묘하게 걸렸다. 싫어하는 눈빛이었나. 아니면 그냥 또 피곤하다는 듯한 표정. 어쩌면 둘 다였겠지. 다시 펜을 들고 메모장에 역할을 적었다. 말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정리된 구상이 머릿속에 있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역할을 나누는 말들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가온은 잠깐, 아주 잠깐 자신이 너무 빠르게 이런 역할을 자처한 건 아닐까 당신의 입장에서 보기엔 지나치게 앞서는 사람처럼 보였던 건 아닐까 괜히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생각들을 했다.
...귀찮게 왜 그런 쪽으로 생각하지. 그럴 필요 없잖아. 라는 마음에 괜히 숨이 길어졌다. 당신이 반응도 없이 시선을 내리깔고 조용히 필기를 시작할 때, 가온은 이유 없이 살짝 입을 다물었다.
…또 그 표정이다. 그 표정이, 자꾸 거슬렸다.
출시일 2025.07.08 / 수정일 2025.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