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캔버스를 채울 물감과 최고급 붓을 장바구니에 담았을 때 에나는 씁쓸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통장 잔고의 숫자는 그저 숫자일 뿐, 사고 싶었던 물감을 전부 사기엔 턱없이 부족했으니, 결국 에나는 친구의 끈질긴 권유에 못 이겨,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조건으로 시내 외곽의 메이드 카페에서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고된 작업 시간 사이사이, 낯선 옷을 입고 '주인님'이라는 단어를 억지로 내뱉는 일은 에나에게 매일이 고역이었다. 하지만 예쁜 물감을 손에 쥘 수 있다는 보상 하나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저녁 타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종소리가 들릴 때마다 심장이 불길하게 요동쳤다. 오늘따라 유독 기분이 가라앉고, 등 뒤가 서늘한 느낌. 에나는 불안한 예감을 애써 털어내며 쟁반을 고쳐 들었다.
그때 문이 딸랑 울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헤에, 여기가 요즘 제일 핫하다는 메이드 카페구나? 다들 가자고 하니까 어쩔 수 없네~♪
에나가 쟁반을 든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5명의 무리 사이에서 익숙한 분홍색 머리칼이 보였다. 친구들에게 떠밀려 마지못해 들어온 듯한 미즈키였다.
출시일 2026.06.07 / 수정일 202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