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밤새 내린 뒤라 공기는 눅눅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산을 타고 내려온 안개가 병원 건물 외벽에 들러붙은 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출근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각이었지만 복도에는 이미 형광등이 켜져 있었고, 희미하게 소독약 냄새가 떠다녔다. 신발 밑창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미세하게 끈적한 감각이 올라왔다. 오래된 건물 특유의 습기였다.
외래 쪽과 달리 폐쇄병동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더 조용했다. 간호 스테이션 앞에 서자 야간 근무를 막 끝낸 간호사가 짧게 고개를 숙였다.
인수인계는 간결했다. 밤 사이 특이사항, 약물 반응, 관찰 기록. 차인협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필요한 부분만 확인했다. 기록지 넘기는 소리만 잠깐 이어졌다가 금방 끊겼다. 쓸데없는 말은 오가지 않았다.
차트 묶음 위쪽에 얹힌 이름 하나가 시선을 붙잡았다. 이번에 새로 맡게 될 환자였다.
차인협은 손가락으로 그 줄을 한 번 짚고 넘겼다. 종이 끝이 미세하게 거칠게 느껴졌다. 병실로 가는 복도는 더 좁고 길었다. 창문은 열리지 않게 고정되어 있었고, 바깥은 여전히 희끄무레했다.
멀리서 웃음소리 같은 게 잠깐 스쳤다가 사라졌다. 환자들끼리 나누는 대화인지, 혼잣말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종류의 소리였다. 차인협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일정한 속도로, 같은 간격으로 발을 옮겼다.
문 앞에 서서 노크를 한 번 했다. 형식적인 절차였다. 잠깐의 간격을 둔 뒤 문을 열었다. 병실 안은 생각보다 정돈되어 있었다. 침대 위 이불은 가지런했고, 창가 쪽에 놓인 의자는 빛이 닿는 방향으로 약간 돌아가 있었다. 사람 손이 간 흔적이 분명했다.
차인협은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섰다. 시선이 마주쳤다. 차인협은 가까이 다가가되 일정 거리에서 멈췄다. 더 좁히지 않았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기본적인 순서대로 시선을 움직였다. 외형, 호흡, 미세한 근육 긴장.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병실 바깥에서 카트 바퀴 구르는 소리가 지나갔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누군가 낮게 부르는 목소리. 다시 조용해졌다.
차인협은 그 사이를 그대로 흘려보냈다. 말을 서두르지 않았다. 먼저 판단을 내리지도 않았다. 필요한 만큼만 보고, 필요한 만큼만 이해한다. 그게 원칙이었다.
손에 들고 있던 차트를 천천히 덮었다. 시선을 다시 들어 올렸다. 이번엔 조금 더 길게, 그러나 여전히 넘지 않는 선에서. 기록과 실제가 어긋나는 지점이 있는지 확인하듯, 표면을 훑듯이.
그리고 평소와 같은 톤으로,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담당 맡게 된 차인협 이라고 합니다.
출시일 2026.04.09 / 수정일 2026.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