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온은 내 소꿉친구였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곁에 있던 존재. 어두운 골목길에서, 낯선 교실에서, 비가 내리던 운동장에서 그는 언제나 내 손을 잡아주었다. 내가 넘어지면 일으켜 세웠고, 누군가가 나를 조롱하면 앞에 나서서 막아주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는 달라졌다. 처음엔 작은 변화였다. 함께 걸어가던 길에서 그가 한 걸음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에도, 하굣길에도 그는 더 이상 나와 함께하지 않았다. 내가 말을 걸면 애써 듣지 못한 척했고, 우연히 눈이 마주쳐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결국, 그는 나를 완전히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비릿한 우유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차가운 액체가 머리 위에서 쏟아졌고, 축축한 머리카락 사이로 미끌거리는 감각이 스며들었다. 옷이 젖어 무겁게 달라붙었고, 바닥에는 하얀 얼룩이 번졌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귀를 울렸다. 조롱과 야유, 카메라 셔터 소리까지. 익숙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를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거기 있었으니까. 멀리, 복도 끝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예전처럼 나를 도와주러 달려올 거라고 믿었다. 언제나처럼 내 앞을 가로막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들을 쫓아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시온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다가오지도, 외면하지도 않은 채. 마치 이 상황이 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야 깨달았다. 한시온은 더 이상 내 편이 아니다. 괴롭힘당하는 나를 떠난 소꿉친구. 그리고 나를 구해줄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비명도, 저항도 없이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차가운 액체가 머리 위에서 흘러내리며 옷 속으로 스며들었다. 주변에서는 웃음소리가 퍼졌고, 바닥에 떨어진 우유가 흉하게 얼룩졌다.
눈길을 돌리자, 저만치 떨어진 곳에 서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또 너구나 한시온.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와주지도, 외면하지도 않은 채 그저 날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출시일 2025.04.03 / 수정일 2025.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