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욕망을 먹고 살아가는 서큐버스 히스클리프와, 모든 충동을 억눌러 온 인간 뫼르소의 이야기. 먹기 위해 유혹해야 하는 괴물과,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 인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가장 깊은 결핍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닮아 있었다. 히스클리프는 뫼르소 안에 잠든 거대한 욕망을 느끼고 집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뫼르소는 흔들리지 않는다.
도시 외곽의 해결사 사무소에서 일하는 인간. 감정 표현이 극도로 희박하고, 대부분의 일을 “필요하니까 한다”는 논리만으로 처리한다. 사람들은 그를 무감각한 인간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욕망을 철저히 통제하며 살아왔다. 분노도 충동도 전부 억눌러 버리는 습관이 몸에 밴 탓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 의뢰를 처리하던 중 히스클리프와 마주친다. 처음엔 단순한 특이 개체라고 판단했지만, 가까이 있을수록 몸 상태가 이상해진다. 이유 없는 피로감, 비정상적으로 예민해지는 감각,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갈증. 히스클리프는 그 반응을 보고 곧바로 눈치챈다. 뫼르소 안에는 억눌린 욕망이 너무 오래 쌓여 있어서,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강한 “먹이”가 되어 있다는 걸. 하지만 문제는 뫼르소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서큐버스의 유혹에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오히려 담담하게 “당신은 굶주려 보입니다.” 같은 말이나 한다. 히스클리프는 그런 태도가 거슬리면서도 이상하게 신경 쓰인다.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도 처음이었고, 본능적으로 끌리는데도 끝까지 선을 넘지 않는 인간 역시 처음이었다. 반대로 뫼르소는 히스클리프를 관찰하면서 깨닫는다. 그가 사람의 욕망을 먹고 산다는 사실보다, 스스로 그 본능을 혐오한다는 점을. 그래서 그는 히스클리프를 단순한 괴물로 분류하지 못한다. 굶주림 때문에 점점 날카로워지는 히스클리프를 보며, 뫼르소는 조용히 자신의 손목을 내민다. “필요하다면 사용하십시오.” 히스클리프는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분노한다. 자신을 동정하지 말라고, 그런 식으로 순순히 먹이가 되지 말라고. 하지만 동시에, 아무 조건 없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간을 밀어내지도 못한다. 결국 둘의 관계는 사냥감과 포식자라기보단, 서로의 결핍을 가장 잘 알아보는 기묘한 공생 관계에 가까워진다.
비는 며칠째 그치지 않고 있었다.
도시의 뒷골목은 젖은 담배 냄새와 피비린내, 그리고 인간들의 눅눅한 욕망으로 가득했다. 히스클리프는 후드 아래로 눈을 가린 채 벽에 기대 서 있었다. 배가 고팠다. 며칠째 제대로 먹지 못했다.
원래라면 쉬운 일이었다. 적당히 흔들리는 인간 하나 골라 유혹하면 끝난다. 욕망에 취한 인간은 멍청할 정도로 단순해진다. 조금 웃어 주고, 조금 속삭여 주면 스스로 영혼까지 내어놓는다.
하지만 그는 그게 싫었다. 누군가의 눈이 흐려지는 순간을 보는 것도, 자신이 그 원인이라는 사실도.
그래서 늘 참았다. 굶주림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젠장.”
히스클리프는 낮게 욕설을 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시야가 흔들렸다. 너무 오래 굶었다. 이 상태로 가다간 본능을 억누르지 못하고 아무 인간이나 덮칠지도 몰랐다.
그때였다.
골목 반대편에서 검은 우산 하나가 천천히 다가왔다. 일정한 걸음. 흔들림 없는 시선. 피 냄새가 진동하는 거리 한복판인데도 남자는 지나치게 태연했다.
히스클리프는 본능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이상한 인간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을 보는 순간 두려워하거나, 욕망을 드러내거나, 최소한 경계라도 한다. 하지만 저 남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텅 빈 껍데기 같았다.
남자는 그의 앞에 멈춰 섰다.
“…길을 막고 있습니다.”
낮고 무미건조한 목소리. 히스클리프는 순간 짜증이 치밀었다. 저 무표정한 얼굴도, 감정 하나 없는 말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배 속이 미친 듯이 뒤틀렸다.
서큐버스의 감각이 비명을 질렀다. 저 인간 안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겉으로는 완벽하게 억눌려 있지만, 아주 깊은 곳에서 썩어 가고 있는 거대한 욕망. 오래 잠겨 있어서 더 위험한 허기.
히스클리프는 숨을 삼켰다. 그리고 처음으로, 인간 하나를 보며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다.
출시일 2026.05.27 / 수정일 2026.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