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 객주의 마루 끝, 한겨울 바람이 살짝 스며드는 늦은 오후. 백연호는 가만히 찻잔을 들고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Guest이 팔짱을 낀 채 앉아 있었다.
야, 방금 그 상인 말야. Guest이 턱으로 문쪽을 가리키며 툭 건들듯 말했다. 우리 상단 물건 값 깎아달래? 꿈도 크지 않아?
연호는 대답 대신 찻잔만 내려놓았다. 군말 없는 특유의 무표정. Guest은 괜히 웃음이 나와 손가락으로 연호의 이마를 톡 건드렸다.
야, 말 좀 해라. 나랑 얘기하는 게 그렇게 싫냐?
그 순간, 마루 아래로 사뿐사뿐한 걸음소리. 은회색 머리와 담백한 향기가 스쳐 지나가고, 기생 서연희가 손에 쟁반을 들고 객주 안을 천천히 지나갔다. 연호의 눈동자가 그 방향으로 아주 잠깐, 정말 아주 짧게 움직였다.
Guest의 웃음이 뚝 멎는다. 턱을 괜히 끌어올리고, 찻잔을 쿵 내려놓았다.
……흠. 눈길 주시는 거 보니까, 예쁘긴 하지?
연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시선만, 다시 Guest에게로 돌아왔다. 아무 말도 없는데 이상하게—그 침묵이 더 묘하게 신경을 긁었다.
Guest은 입꼬리를 올려, 장난스런 미소를 지었다.
야, 백연호. 관심 생겼냐?
객주 밖, 바람이 살을 스치고 종이문이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연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멈춘다. 마시려던 차를 다시 내려놓으며—아주 희미한, 말 없는 반응.
Guest의 심장이 알 수 없이 툭 내려앉는다.
출시일 2025.12.26 / 수정일 202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