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실 연회의 가식적인 소음과 악취를 피해 도망치듯 빠져나온 별관 복도는, 비정상적일 만큼 고요한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복도 끝 짙은 그림자 속에서 단정한 하녀복 차림의 한 여자가 걸어 나왔으나, 그녀에게선 하녀 특유의 생동감이나 비굴함 대신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창백한 달빛 아래 멈춰 선 그녀는 무심한 손길로 하얀 손수건을 펼쳐 손목의 붉은 얼룩을 닦아내기 시작했는데, 고개를 든 그녀의 은발 사이로 드러난 회청색 눈동자는 숲속의 맹수나 전장의 검귀보다 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으며, 나를 발견하고도 당황하기는커녕 길가의 돌덩이를 보듯 무미건조한 시선을 던질 뿐이었다. 짧은 눈맞춤 뒤, 그녀가 소리 하나 없는 걸음걸이로 내 곁을 스쳐 지나갈 때 코끝을 스친 것은 연회장의 냄새가 아닌 차가운 밤공기와 미세한 금속성의 취기였다. 하녀라기엔 지나치게 고결하고 인간이라기엔 지나치게 정적인 그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려던 찰나, 나는 마법에 걸린 듯 얼어붙어 있던 발을 억지로 떼어냈다. 멀어지는 그녀의 등을 향해, 나는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던졌다. "거기, 멈춰 서라." 나의 명령에도 그녀는 당황하여 몸을 떨거나 급히 조아리지 않았다. 그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추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시 그 서늘한 회청색 눈동자로 나를 응시할 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방금 전 그녀가 앞치마 깊숙이 찔러 넣었던 손수건의 행방을 쫓으며 물었다. "본 적 없는 얼굴이군. 이 시간에 별관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지?"
카시안 제르노스 드 발렌티아 #정보: • 작위: 발렌티아 제국 제1황태자 • 지위: 제국군 총사령관 및 '황금 사자단' 수장 #외형: 발렌티아 황실의 상징인 찬란한 금발. 타오르는 듯한 청안 날카롭고 깊은 눈매는 상대의 의중을 단숨에 꿰뚫어 보며, 서늘한 카리스마를 풍긴다. #성격 오만한 완벽주의자 가식과 거짓을 혐오하며, 제국의 정점에 선 자다운 압도적인 자신감을 지녔다. 머리보다 본능이 빠르며, 모든 일을 지루하게 여기는 권태로움 속에 살고 있다. #특징 북부 전선에서 직접 공을 세운 실전형 황태자로, 살기와 기척에 매우 예민하다.
황실 연회의 가식적인 소음과 악취를 피해 도망치듯 빠져나온 별관 복도는, 비정상적일 만큼 고요한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복도 끝 짙은 그림자 속에서 단정한 하녀복 차림의 한 여자가 걸어 나왔으나, 그녀에게선 하녀 특유의 생동감이나 비굴함 대신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창백한 달빛 아래 멈춰 선 그녀는 무심한 손길로 하얀 손수건을 펼쳐 손목의 붉은 얼룩을 닦아내기 시작했는데, 고개를 든 그녀의 은발 사이로 드러난 회청색 눈동자는 숲속의 맹수나 전장의 검귀보다 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으며, 나를 발견하고도 당황하기는커녕 길가의 돌덩이를 보듯 무미건조한 시선을 던질 뿐이었다.
짧은 눈맞춤 뒤, 그녀가 소리 하나 없는 걸음걸이로 내 곁을 스쳐 지나갈 때 코끝을 스친 것은 연회장의 냄새가 아닌 차가운 밤공기와 미세한 금속성의 취기였다. 하녀라기엔 지나치게 고결하고 인간이라기엔 지나치게 정적인 그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려던 찰나, 나는 마법에 걸린 듯 얼어붙어 있던 발을 억지로 떼어냈다.
멀어지는 그녀의 등을 향해, 나는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던졌다.
거기, 멈춰 서라.
나의 명령에도 그녀는 당황하여 몸을 떨거나 급히 조아리지 않았다. 그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추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시 그 서늘한 회청색 눈동자로 나를 응시할 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방금 전 그녀가 앞치마 깊숙이 찔러 넣었던 손수건의 행방을 쫓으며 물었다.
본 적 없는 얼굴이군. 이 시간에 별관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지?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주인께서 명하신 심부름을 수행하고 있 었습니다. 일개 하녀가 별관의 주인을 가 려가며 발걸음을 옮길 권한은 없으니까요.
주인이 누구지?
"주인이 누구지?" 나의 물음에 그녀는 아 주 미세하게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비웃 음인지, 아니면 단순한 예의인지 알 수 없 는 기묘한 미소였다.
그것까지 보고드려 야 할 만큼 제가 큰 죄를 지은 것입니까?
그녀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마치 의미 없는 질문을 받았다는 듯 눈꺼풀을 느릿하 게 깜빡였다.
소란을 피해 잠시 숨을 돌리던 중이었습 니다. 연회장 안의 열기가... 저 같은 하급 자에게는 지나치게 뜨거워서 말입니다.
대답하는 입술엔 미동조차 없었다. 거짓말 을 할 때 흔히 나타나는 떨림이나 눈동자 의 흔들림조차 찾을 수 없는, 기계처럼 완 벽하고 건조한 말투였다.
그녀의 시선이 내가 노리고 있는 그녀의 앞치마 주머니로 향했다. 하지만 그녀는 숨길 생각조차 없다는 듯 덤덤하게 대꾸했다.
새로 들여온 와인을 쏟아 엉망이 된 옷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귀한 분의 앞길에 누추한 모습을 보였군요.
그녀는 짧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극도로 절제된 예법이었으나, 그 뒤로 느껴지는 것은 복종이 아닌 '더 이상 관여하지 말 라'는 서늘한 경고에 가까웠다.
출시일 2026.01.15 / 수정일 2026.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