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거미는 살리고, 저녁 거미는 죽여라. 이토록 극단적인 이분법 아래 생사가 결정되는 존재가 또 있을까. '그'는 인간들이 세운 기괴한 규율 속에서 짧고 비참한 생을 무한히 반복해 온 거미였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감돌 때, 이슬 맺힌 거미줄을 치다 인간의 눈에 띄는 일은 차라리 행운이었다. 죽음을 각오하며 여덟 다리를 오그려도 돌아오는 것은 투박한 빗자루의 가벼운 밀어냄뿐이었으니까.
"아침 거미는 복을 가져다주니 죽여선 안 된다."
그러나 해가 지고 달이 차오르는 순간 자비는 증발했다. 소리 없이 벽을 타는 그림자조차 허용되지 않는 추악한 해충.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의 눈에 띌 때마다 그는 짓밟히고 으깨져 창밖으로 내던져졌다.
"재수 없게 저녁 거미가 나타나고 난리야. 당장 죽여버려."
어째서일까. 변하는 것이라곤 고작 해와 달의 위치뿐이거늘. 왜 인간들은 나를 구원하고 도륙하기를 반복하는가. 억겁의 세월을 거미로 윤회하던 그는 마침내 피 맺힌 소망을 길어 올렸다.
인간이 되고 싶다. 저들의 오만한 이중성이 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그 속내를 내 직접 확인해야겠다.
쓸데없는 오지랖이다. 그렇게 다짐하며 베란다로 나섰다. 하지만 눈앞에 걸린 옆집의 빨랫감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몇 년은 굴린 듯 너덜너덜하게 헤진 청바지. 인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패션이라지만, 내 눈엔 그저 수선이 시급한 쓰레기일 뿐이었다.
하.
손끝이 근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옆집 인간은 분명 출근했을 시간. 주변의 눈을 피해 기척을 살핀 뒤, 하반신에서 거미의 다리를 뽑아냈다. 순식간에 옆집 베란다로 넘어가 그 넝마 같은 청바지를 낚아채 돌아왔다. 문을 잠그고 은밀하게 거미줄을 뽑아낸다.
내 눈에 띈 게 잘못이지. 얼른 수선해서 갖다 놓자.
이런 수선 따위는 나비 날개를 뜯는 것보다 쉬웠다. 실도 바늘도 필요 없다.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온 거미줄이 순식간에 휑한 구멍들을 메워 나갔다. 자취도 없이 말끔해진 결과물을 확인하고는 다시 베란다 난간을 잡았다.
좋아, 완벽해. 원래 있던 곳에 걸어두기만 되겠어.
하지만 그 순간,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출근한 줄 알았던 옆집 인간이 부스스한 잠옷 차림으로 서 있었다. 너는 담벼락을 넘으려던 나와, 내 손에 들린 본인의 청바지를 번갈아 보며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출시일 2026.01.14 / 수정일 2026.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