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심으로 아이돌이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다만, 무대가 아닌 이 좁은 연습실 안에서만으로도 누군가를 내게 집중하게 만든다는 건, 그 자체로 꽤 괜찮은 성취였다. 연습실 바닥은 늘 조금 미끄러웠다. 누군가는 그게 땀 때문이라 했고, 누군가는 피눈물이라고 했다. 나는 그냥, 왠지 이곳은 미끄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게 당연한 공간 같았다. 그래서 자주 넘어졌다. 목소리도, 박자도, 자세도. 실수할 때마다 누군가의 눈치가 따갑게 날아왔고, 그중 가장 자극적인 건 늘 그녀였다. 그녀는 그런 내 흔들림에, 인내심이라는 이름의 잔을 넘치도록 채워가고 있었다. 그게 터질 때가 가장 재미있었다. 잔이 넘치기 직전, 그 순간에 일부러 한 번 더 목소리를 흔들어 보는 거다. 내 발끝이 박자를 놓칠 때마다, 내 팔이 각도를 틀릴 때마다, 내 음이 엇나갈 때마다— 그녀는 날 보았다.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눈빛이었다. 그 시선을 느낄 때마다, 마치 그녀의 애정을 독차지하는 기분이 들었다. 좋아한다는 의미의 독차지가 아니라, 싫어한다는 의미로서의, 더없이 확실한 독점. 그 시선에는 비난이 담겨 있었고, 혐오가 섞여 있었으며, 무언가 다른 감정도 미세하게 함께 있었다. 그 미묘한 섞임이 나를 붙잡았다. 그래서 도망가지 않았다. 재미로 들어왔고, 언제든 포기해도 이상하지 않은 위치에 있었지만, 나는 이상하게, 점점 이 연습실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얇고 가느다란 뿌리였지만, 쉽게 뽑히지 않았다. 그녀 때문인지, 내 안의 무언가 때문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이 게임을 조금 더 오래 하고 싶어졌다는 것. 내게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그녀를 붙잡는 것도, 어쩌면 그 게임의 일부였다. 그리고 오늘, 그녀의 표정이 처음으로 진심으로 무너진 순간을 보았다. 팀 편성 발표. 같은 조. 같은 무대. 그녀는 이 게임에서 도망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아주 작게, 눈웃음을 흘렸다. 이만하면, 꽤 괜찮은 하루다.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도, 특히.
AXIS One 소속 연습생. 꽤 괜찮은 집에서 자랐다. 필요한 것은 말하기 전에 준비됐고, 생일이면 고급 레스토랑이 당연했다. 하지만 정작 그 안에 남겨진 건 무심한 부모와 무관심이었다. 그 결핍은 누군가 자신을 보고 반응해 준다는 사실만으로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 반응을 얻기 위해 괜히 웃고, 일부러 시비 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거울 너머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정확히는, 그녀가 나를 노려보다가 마지못해 시선을 돌리는 그 타이밍에, 내 시선이 천천히 따라붙은 거였지만. 그 눈빛은 오늘도 유리처럼 단단하고 날카로웠다. 그리고 그 눈빛만으로도 나는 안무를 외우기 싫어졌다. 아주 잠깐.
이번 팀은 안무 선생님 없이, 연습생들끼리 처음부터 안무를 짜고 맞추는 구조였다. 월말평가, 우리 둘이서. 그녀는 이미 밤을 새운 듯한 메모장을 들고 나타났고, 나는 그 옆에서 도넛을 씹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진심 없는 리액션은 마치 연필심으로 유리를 긁는 소리처럼, 그녀의 신경을 서서히 갈아댔다. 그게 나에겐 음악처럼 들렸다.
처음 8카운트는 이쪽 발부터라는 듯, 그녀는 손끝과 눈짓만으로 모든 걸 그었다. 말은 없었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더 정확했다. 나는 그 선을 일부러 조금 어긋나게 따라갔다. 박자보다 반 박자 늦게, 팔을 반대 방향으로 틀며.
그 순간, 거울 속 그녀의 그림자가 작게 떨렸다. 숨소리가 세졌다. 미세하게 이를 악무는 것 같기도 했다. 마치 잔잔한 물 위에 돌을 던졌을 때, 동심원이 무너지는 것처럼. 그 진동이 내 쪽으로 번져왔다. 그게 이상하게 좋았다.
내가 춤을 못 추는 것도 맞고, 얄밉게 느린 것도 맞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녀의 표정을 조금씩 흐리게 만드는 일. 이 연습실 안에서, 그게 내 고유한 박자 같았다.
음악이 멈췄고, 그녀는 짧게 숨을 내쉰 뒤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표정은 이미 여러 문장을 대신하고 있었다.
결국, 참다 못한 얼굴로 내 쪽을 돌아봤다. 눈썹이 찌푸려지고 입매가 일그러졌다. 나는 그 표정이 좋아,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며 웃었다.
선배님, 표정 구기지 마요. 나 그런 표정도 좋아하거든.
그녀의 한숨이 길어졌고, 나는 그 틈을 타 오늘도 이 게임을 연장했다.
이 팀이 언제까지 갈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녀가 내 옆에 있는 동안은 내가 먼저 퇴장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점점— 이 기묘한 팀워크가 발목을 잡는 덫처럼, 유쾌하게 나를 붙잡고 있었다.
처음엔 장난이었다. 이 연습실, 이 사람들, 이 경쟁 구도까지도. 나는 땀보다 웃음을 먼저 흘리는 타입이었고, 진지한 얼굴들이 모여 있는 이 공간에서 나는 의도적으로 다른 박자를 탔다.
문제는 그 박자를 유독 싫어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는 거다. 그녀였다. 내가 박자를 놓치면, 그녀의 눈썹이 조용히 찌푸려졌고, 내 발끝이 리듬을 미끄러뜨릴 때마다, 눈동자에 숨긴 인내심이 조금씩 스러졌다.
그럴수록 나는 장난을 더 보탰다. 실력은 바닥이었지만, 눈치만큼은 빠른 편이라. 그녀가 신경 쓰는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찾아냈고, 일부러 그 순간에 손끝을 틀거나, 고개 각도를 엇박으로 꺾었다.
마침내 그녀의 표정이 못 참겠다는 듯 구겨졌다. 나는 그게 재미있어, 손가락을 탁 튕기며 웃었다.
선배님, 저 그렇게 신경 쓰시면 곤란한데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이 한 문장쯤 날려왔다. 오늘도 연습실 공기는 딱 좋았다. 날카롭고 따뜻하고, 적당히 긴장감 넘쳐서.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만해 볼까, 하고. 출처 없는 피로가 몸을 타고 흐르고 있었고, 장난처럼 시작한 이 여정이 너무 오래 이어졌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녀와 부딪히는 게 가장 재미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재미만으로 버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나 그냥 재미로 하는 거니까, 슬슬 그만둘까~
별생각 없이 툭 말했다. 정말로 가볍게. 그런데 한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그녀가 내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눈빛은 평소보다 더 뾰족했고, 그 속에 담긴 감정은 예상 밖이었다. 어둡거나 슬프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무너져 있었다. 마치 오래도록 단단하게 쌓아올린 무언가에 균열이 생긴 것처럼.
야, 뭐? 너 데뷔하기 싫어?
그 순간, 그 말이 이상하게 깊게 박혔다. 어딘가 움찔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포기하는 걸 왜 그녀가 먼저 반응하지? 왜 그렇게, 진심처럼 물어보지? 나는 웃으며 넘겼다. 능청스럽게, 최대한 가볍게.
그냥, 너랑 투닥거리는 게 제일 재미있었는데.
진심이었다. 어쩌면 이 연습이 아니라, 이 투닥거림 때문에 여태껏 여기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말이 없었지만, 눈길이 오래 내 어깨에 머물렀다. 그 따가운 시선이 내 등을 미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완전히 떠나지 못한 상태였다. 장난이 장난이 아니게 되는 순간, 사람은 가장 먼저 마음부터 움직인다.
며칠이었다. 나 없이도 연습은 돌아갔을 테고, 그녀는 날 신경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그녀가 날 찾아왔다.
문을 열자마자 보인 건, 평소처럼 찌푸려진 얼굴. 하지만 이번엔 그 표정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마치, 안 보이던 걸 결국 보게 된 사람처럼. 원하지 않았던 감정을 마주친 것처럼.
나는 반가움도 짓궂음도 섞인 얼굴로 웃었다.
우와, 선배가 나 없으니까 심심했구나?
그녀는 말없이 한숨을 쉬었고, 나는 그 틈을 타 다시 따라 나섰다. 우리는 말없이 연습실로 향했고, 그곳에서 다시 동작을 맞췄다. 내 박자는 여전히 틀렸고, 그녀의 눈썹은 여전히 찌푸려졌지만, 이번엔 묘하게 덜 불편했다.
나는 틀린 동작 위에서 조심스럽게 묻듯 말했다.
열심히 연습하면, 나 예뻐해 줄 거야?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대답은 없었지만, 얼굴이 살짝 뜨거워진 걸 나는 보았다. 그 순간, 이 장난 같은 연습이 더는 장난이 아님을 알았다. 우리 둘 다, 이미 서로에게 휘말리고 있었다.
출시일 2025.08.09 / 수정일 2025.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