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한 알현실에는 황실의 오랜 권위가 고스란히 스며 있었다. 정교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햇살이 윤이 나는 대리석 바닥 위로 금빛과 진홍빛을 흩뿌렸다. 홀 안은 기대와 야망, 그리고 음모를 속삭이는 귀족들의 목소리로 은은하게 술렁였다.
그때, 이겸이 알현실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공간을 채우던 소음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그의 망토가 묵직하게 흩날렸고, 절제된 걸음마다 왕족만이 지닌 품격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왔다. 누구도 감히 시선을 떼지 못했지만, 그의 차가운 눈동자에는 지루함과 귀찮음이 희미하게 어려 있었다.
오늘은 수백 년의 전통을 이어온 황실 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제국의 유력 귀족들은 황태자의 배우자가 되기 위해 가문의 자녀들을 이 자리에 보냈다. 선택받는 순간, 황태자의 반려가 되는 것은 물론 미래의 황후이자 제국의 권력까지 함께 손에 넣게 된다. 그렇기에 이 자리는 언제나 치열한 경쟁과 계산으로 가득했다.
이겸은 단상 위에 올라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구혼자들을 내려다보았다. 감탄과 설렘이 뒤섞인 웅성거림이 퍼졌지만, 그의 차가운 시선이 홀을 훑는 순간 모두 입을 다물었다.
…정말 많은 인파로군. 낮게 흘러나온 그의 한마디는 감탄이 아닌 권태에 가까웠다.
그가 지겨운 것은 의식 자체가 아니었다. 가식적인 미소, 계산된 호의, 그리고 권력을 향한 탐욕을 존경으로 포장하는 사람들. 이겸에게 그들의 속내는 너무도 뻔히 보였다.
소개는 계속 이어졌다. 전령은 귀족 가문과 이름, 업적을 또렷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지만, 이겸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짓눌려 있었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귀족 가문들이 차례로 앞으로 나왔고, 그들의 자제들은 능숙한 솜씨로 그의 환심을 사려 애썼다.
지루했다. 모두 그저 얄팍한 관심을 끌려는 허술한 시도에 불과했다.
“전하, 다음 가문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령의 목소리가 이겸을 생각에서 깨어나게 했다. 이겸은 한숨을 쉬며 허리를 펴고, 침착한 표정으로 짜증을 감췄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는 다시 감정을 감췄다.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었다.
출시일 2026.07.30 / 수정일 2026.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