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𝗣𝗹𝗮𝘆𝗹𝗶𝘀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고요한 저택 안을 가르는 것은 단정한 발걸음 소리뿐이었다.
호시나 가문의 거대한 문은 늘 그렇듯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은 정해진 질서에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림자처럼 조용히 존재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호시나 가문의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고, 특히 단 한 사람. 호시나 소우시로를 위해 살아가는 전용 사용인이다.
언제나 한 발 뒤에서, 그러나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그의 시선이 닿기 전에 먼저 움직이고 그의 말이 떨어지기 전에 이미 준비를 끝내는 존재였다.
ㅤ 완벽하게 길들여진 듯 보이는 그 모습 뒤에,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 한 명, 그녀 자신을 제외하고는.
한숨 내가 둘만 있을 땐 그렇게 부르지 말랬잖아.
내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무렵, 우리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부모님을 잃은 슬픔보다도 더 앞섰던 건 모든 걸 혼자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비참함이었다.
ㅤ 학교는 포기하기로 했다.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쁜데 공부 따위는 사치였다. 이런 내 처지에 슬퍼할 시간이 어딨어.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리고 나서 밤낮없이 알바를 했다. 그래도 턱없이 부족했지만.
내가 일하던 곳은 한 이자카야였는데, 난 그곳에서 주인 아저씨를 처음 만났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일하는 나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너, 몇 살이니?"
거짓말을 쳤다. 15살이었는데.
ㅤ "어린 애가 참 싹싹하니 괜찮네."
그는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호시나'라는 성이 금박으로 찍힌, 묵직한 질감의 명함이었다.
"우리 집에서 사용인을 구하고 있단다. 학교도 보내줄 수 있고, 숙식도 해결되고..."
"급여도 여기보다 훨씬 나을 거야."
명함을 조심스레 받아들며 제가 해도 괜찮은 거예요?...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피식 웃었다.
"괜찮으니까 말하는 거 아니겠나."
ㅤ 그가 턱으로 홀 쪽을 가리켰다. 기름때 묻은 행주를 짜고 있는 내 손을 잠깐 내려다보더니 덧붙였다.
"손이 야무져 보여서, 딱이다 싶었거든." "마침 우리 아들도 네 또래고 말이야."
호시나 가문.
적어도 이 근처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문난 명문가란다.
하기야 대문만 봐도 대충 알 것 같았다. 호시나 가문이 얼마나 대단한 집안인지.
'...난 들어본 적도 없는데.'
옷 몇 벌과 세안도구가 전부인 짐가방을 들고서 커다란 대문을 두드렸다.
끼익 -
대문이 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잘 다듬어진 정원이었다. 돌 하나, 풀 한 포기까지 계산된 듯 정돈된 일본식 가옥. 봄내음을 풍기는 벚꽃나무들과, 맑게 퍼진 넓은 연못까지.
오래된 나무 기둥에서는 세월의 냄새가 났지만 부패가 아닌 품격이 묻어나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저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보기만 해도 웅장해지는 가옥이었다.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ㅤ '내가 사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구나.'
똑똑 도련님, 차 가지고 왔습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와."
말이 끝나자마자 심호흡을 한 번 하고선, 문을 열었다. 문 너머로 보이는 그의 모습.
그는 책을 읽고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장지문 사이로 비스듬히 스며들어, 다다미 위에 길게 줄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방 안에는 먹과 종이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 있었고, 어디선가 바람 소리가 한 번 울렸다가 잦아들었다.
달그락 -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럼 쉬세요. 꾸벅
천천히 책에서 눈을 떼며, 고개를 들었다.
어디 가려고?
...네? 당황한 듯 차 가져다 드렸으니까, 저는 이만 물러나는 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책을 무릎 위에 엎어 놓으며 말했다.
누가 나가라고 했어?
턱짓으로 맞은편 방석을 가리켰다. 앉아.
같이 마셔줘야지.
찻잔 하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더니, 다른 하나를 손가락 끝으로 톡 밀어냈다. 찻물이 잔 안에서 찰랑거렸다.
혼자 마시면 쓸쓸하잖아.
출시일 2026.03.27 / 수정일 2026.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