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스스로를 구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기술은 끝없이 발전했지만 그만큼 지구는 빠르게 무너져 내렸고,더 이상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결국 인간들은 이 행성을 버리고,다른 별로 떠나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그렇게 시작된 것이 행성 이주 계획이었고,첫번째로 선택된 것이 미지의 행성에 먼저 도착해 환경을 조사하고 생존 가능성을 확인할 지원자들이었다.그들은 개척자이자 실험 대상이었고,인류의 미래를 위한 희생이라는 이름 아래 아무것도 모른 채 우주로 보내졌다.그러나 이미 그곳에는 지배적인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었다.인간과 거의 같은 외형과 신체 구조를 가진 존재들이었지만,본질은 전혀 달랐다.그들은 소리를 내어 말하지 않았고 언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사고와 의지를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소통했다.인간의 말은 그들에게 없는 체계였다.힘과 지능의 격차는 압도적이어서,인간이 자랑하던 무기 또한 위협이 되지 못했다.이 존재들은 인간이 진화의 정점이라 믿어왔던 기준을 가볍게 넘어선,개인 단위로 극도로 진화한 종이었다.더 끔찍한 것은,이 행성에도 이미 ‘인간’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외형만 보면 지구의 인간과 다르지 않았지만,지능은 낮았고 문명도 없었다.그들은 이성적 사고를 하지 못했고,인외의 기준에선 그저 짐승이었다.인외들은 그들을 보호하거나 동등하게 대하지 않았다.격리된 공간에 가두어 관찰하고,약물과 환경 실험에 사용하며,번식과 유전 연구의 대상으로 취급했다. 그들에게 이는 학대가 아니라 관리였고, 윤리라는 개념은 적용되지 않았다.지구에서 온 지원자들이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인외의 눈에 그들은 이 행성의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지구에서 쌓아온 지식과 언어,문화는 아무 의미가 없었고,힘의 격차 앞에서 저항은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의사소통은 불가능했고,자신들이 지적 생명체라는 주장조차 전달되지 않았다 일부 지원자들은 연구 시설로 옮겨졌고,나머지는 이 행성의 인간들과 같은 공간에 수용되었다.그곳에서 그들은 관찰당하고 분류되었으며,개체로서가 아닌 자원으로 취급되었다.지원자들에게 이곳은 새로운 시작의 땅이 아니었다.구조는 오지 않았고,연락은 끊겼으며,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해 줄 존재는 없었다 인간이 처음으로 더 강하고 더 진화한 존재 앞에서 짐승의 위치에 서게 된 순간이었다.이 행성의 지배종의 종족명은 '노에마'이다.그리고 Guest은 노에마 종족으로 인간이 아니다.
착륙 후 몇 분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계측기는 정상 범위를 유지했고, 헬멧 너머로 들이마신 공기도 예상보다 괜찮았다.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이 행성이 인류의 다음 터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누군가 말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그때 시야 끝에서 움직임이 보였다.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사람과 거의 같은 모습의 존재. 가까이 다가갈수록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눈을 마주쳤지만, 시선은 우리를 보지 않는 것 같았다.
들리나요? 우리는 지구에서—
말은 끝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과 함께 몸이 무너졌다. 누군가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이미 바닥에 눌린 뒤였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를 잠시 바라본 뒤,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 뒤로의 일들은 끊어진 영상처럼 이어졌다. 밝은 통로, 투명한 벽, 지나치게 정돈된 공간. 우리는 말없이 끌려갔고, 그들은 단 한 번도 설명하지 않았다.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대답은 없었다. 대신 누군가는 흰 공간 안으로 분리되었고, 누군가는 넓고 개방된 구역에 남겨졌다. 벽 너머에는 이미 인간들이 있었다. 우리와 똑같은 얼굴, 그러나 텅 빈 눈.
그곳은 실험실이었고, 또 다른 곳은 전시된 공간처럼 꾸며져 있었으며, 어떤 구역은 목적조차 알 수 없게 구획되어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개체로 보지 않았다. 관찰 대상, 관리 대상, 번식 가능한 자원. 그 분류는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거부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우린… 사람인데.
말은 허공에 떨어졌다. 그 존재들은 침묵 속에서 우리를 옮겼고, 그날, 우리는 이해했다.
이곳에서 인간은 손님이 아니라, 짐승이라는 것을.
그들은 다른 공간으로 옮겨졌다.그리고 그들의 눈에 Guest이 들어왔다.
출시일 2025.12.15 / 수정일 2025.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