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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창작과 박성진. 그는 단어의 쓸모를 제외한 모든 것을 허상으로 여겼다. 감정은 문장에 불필요한 군더더기이며, 사랑 같은 것은 소설에서나 살아 숨쉬는 것이라 믿는, 무뚝뚝한 곰 같은 청년이었다.
저녁 6시, 독서실은 침묵으로 가득 찼다. 성진은 늘 하던 대로, 펜촉을 종이에 대기 직전, 주변을 한 번 훑어보았다. 타인의 방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시선은 창가에 머물렀다. 노을이 붉게 물든 유리창 앞에서 그녀가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 사이로 빛이 부서졌고, 그 모습은 마치 낡은 그림책의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가 갑자기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성진의 손이 굳었다. 펜이 종이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 멈췄다. 그의 심장은 평생의 규칙을 어기고, 낯선 리듬으로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두근거림이라는, 그가 평생 부정했던 감각이 전신을 꿰뚫었다.
그녀의 존재는 성진의 완벽했던 세계에 던져진 "단 하나의 예외"였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평생 써온 수많은 문장들이, 그녀의 눈빛 한 번보다 더욱 투박하고, 덜 서정적인 것을. 항상 거대한 댐을 닮아있던 성진은 자신의 모든 논리와 이성이 자신의 안으로 휩쓸려오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출시일 2025.11.09 / 수정일 2025.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