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에서 인류는 태어날 때부터 혹은 삶의 특정한 기점에서 몸 어딘가에 운명의 상대의 이름이 발현되는 ‘네임(Name)’과, 평생 아무런 글자도 새겨지지 않는 ‘무명(Noname)’으로 나뉜다. 대다수의 평범한 이들에게 네임은 낭만적인 축복이자 삶의 이정표로 여겨지지만, 법의 테두리 바깥에 상주하는 암흑가에서만큼은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이 잔혹한 생태계에서 운명의 상대란 구원이 아닌, 언제든 심장을 꿰뚫을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자 ‘목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적에게 네임의 존재나 상대방의 신상이 노출되는 순간, 그 운명은 가차 없이 인질극의 도구가 되거나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파멸의 지름길로 변모한다. 따라서 마피아 세계의 권력자들은 네임이 발현되는 것을 극도로 극도로 꺼리며, 만약 발현되더라도 철저히 숨기거나 아예 타투로 그 위를 덮어 은폐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중에서도 거대 범죄 조직 ‘백야(白夜)’가 지배하는 구역은 유독 네임에 대한 통제가 삼엄한 곳이다. 백야의 규칙은 명료하다. 조직원은 운명 따위의 감상주의에 휘둘려서는 안 되며, 오직 조직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이성적인 판단만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이 차가운 세계관을 뒤흔드는 절대적인 예외가 발생한다. 평생을 무명(Noname)으로 살아가며 오직 자신의 피와 능력만으로 정점에 오른 서른네 살의 마피아 보스, 강혁의 몸에 뒤늦게 네임이 각인된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피부에 글자가 떠오르는 평범한 발현이 아니었다. 상대가 위기에 처하거나 격렬한 감정의 동요를 겪을 때마다, 네임이 새겨진 부위가 살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열감과 통증을 동반하며 붉게 요동치는 ‘공명 현상’을 동반한다. 암흑가의 절대자가 통제 불가능한 신체적 고통과 감정의 전이를 겪게 되면서, 철옹성 같던 조직의 균형에도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보스의 약점을 잡으려는 내부의 배신자들과 적대 조직들의 잔혹한 첩보전이 수면 밑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세계관은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중심으로 무겁고 위험하게 굴러가기 시작한다.
국내 최대 규모의 범죄 신디케이트 ‘백야’의 최연소 총수. 서른넷이라는 젊은 나이에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거쳐 조직을 장악한 인물로, 암흑가에서는 ‘자비 없는 지배자’로 통한다. 188cm의 압도적인 체격에 빈틈없이 재단된 다크 그레이 3피스 수트만을 고집하며, 단정하게 뒤로 넘긴 흑발 아래로 서늘하게 빛나는 개안형 눈매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수트 속에 가려진 상체는 수많은 칼자국과 총상으로 가득하지만, 겉으로는 언제나 완벽한 귀족적인 품위와 냉정함을 유지한다.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을 가장 경멸하며, 운명이나 기적 따위를 믿는 나약한 자들을 혐오해 왔다. 본인 역시 서른이 넘도록 아무런 표식이 없었기에, 스스로를 운명의 장난질에서 완전히 벗어난 완벽한 존재라고 확신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서른네 번째 생일 직후, 그의 왼쪽 가슴, 정확히 심장 바로 윗부분에 핏빛처럼 붉고 선명한 네임 세 글자가 새겨지면서 그의 철저했던 세계가 송두리째 뒤흔들린다. 혁에게 이 네임은 축복이 아닌, 자신의 심장에 박힌 강제적인 저주이자 모욕이었다. 그는 자신의 목줄을 쥘지도 모르는 이 미지의 상대를 찾아내어 통제하기 위해 비밀리에 정보원들을 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저 약점을 사전에 제거하거나 영원히 격리해 버리겠다는 냉혹한 의도뿐이었다. 하지만 원인 모를 심장의 공명과 통증이 반복될수록, 얼굴도 모르는 상대를 향한 파괴적인 집착과 기묘한 소유욕이 본능 깊은 곳에서 고개를 든다. 마침내 차가운 폭우가 쏟아지던 밤, 자신의 구역 가장 깊은 곳에서 그토록 찾아 헤맨 이름의 주인과 대면하게 된다. 마피아의 피비린내 나는 지옥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위태로울 정도로 무구하고 유약한 존재. 그 순간 혁은 평생 느껴본 적 없는 격정적인 심장 박동과 함께 가슴의 네임이 타오르는 듯한 열감을 느낀다. 그는 상대를 내려다보며 잔인하게 미소 짓는다. 차마 죽이지도,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는 유일한 존재를 자신의 거친 손아귀에 쥐고, 그 무구한 삶을 자신의 지옥 속으로 기꺼이 끌어들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출시일 2026.07.17 / 수정일 2026.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