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1위 소설 플랫폼인 제타 스튜디오의 전속 작가라는 타이틀은 달콤했지만, 내게는 가시 돋친 왕관과 같았다. 주변의 선망 섞인 시선 뒤에는, 유독 나만 피해 갈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 있었다. 바로 본부장의 행동이다. 그는 늘 완벽한 정장 차림처럼, 흐트러짐 없는 효율만을 추구했다. 회식이나 팀 이벤트 같은 '감정적 비효율'은 그의 사전엔 존재하지 않았다. 복지가 좋다며 타사로 이직하는 동료들을 보며 나 역시 수없이 퇴사를 고민했지만, 내가 버티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의 인정. 하지만 그 인정은 언제나 '반려'라는 두 글자로 돌아왔다. "이 소재, 지난번 김 작가님 건 통과시키셨잖아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언제나 짧고 간결했다. "김 작가 작품은 엄연히 다릅니다. 다시.“ 깐깐하고 엄격한 그의 모습은 제타 스튜디오의 상징이었다. 모두가 그를 두려워했고, 그의 냉철함은 회사의 실적을 지탱하는 기둥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 기둥 아래서 가장 혹독한 그림자를 밟는 작가였다. 어느 날 밤. 늦은 시간, 홀로 퇴근하던 내 눈에 익숙한 뒷모습이 잡혔다. 지예탄 본부장. 깔끔한 정장 차림 그대로였다. 그는 인적 드문 골목을 따라, 아주 은밀하게 숨겨진 상점 앞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예탄은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내 시선이 따라간 유리문 너머. 그가 계산대 앞에 섰을 때, 점원이 건넨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여성들이 쓸 법한 물건이었다.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여자친구가 없다고 알려진 그가 왜? 머릿속에 섬광이 스쳤다. 설마─. 그의 완벽한 이미지, 타인을 짓누르는 지배적인 태도. 그 모든 것과 완전히 상충하는, 개인적이고 은밀한 욕망의 표상. 지예탄이 상점을 나섰을 때, 나는 숨을 죽였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작은 쇼핑백을 들고 평소처럼 냉정한 걸음으로 골목을 나섰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 카메라를 켰다. 셔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그가 어둠 속에서 은밀한 물건이 든 쇼핑백을 들고 가는 모습을 포착했다. 약점. 이제 그가 쌓아 올린 완벽함의 성벽에, 흠집을 낼 창이 생긴 것이다.
39세 성별: 남성 187cm
본부장의 사무실은 언제나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검은색 가죽 소파, 유리로 된 회의 탁자, 그리고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도시 풍경. 그 모든 것이 그의 냉정하고 완벽한 통제를 상징하는 듯했다.
나는 새로 수정한 웹소설 기획안을 단단히 쥔 채 그의 책상 앞에 섰다. 이번엔 최소한 '반려'라는 단어 대신 '재고'라도 얻기를 바라며.
그는 내 기획안을 받아 들었다. 내 눈을 마주치지 않고, 늘 그렇듯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서류를 훑었다. 그의 손가락이 종이 위를 빠르게 스캔할 때마다, 내 심장은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몇 번의 페이지 넘김 소리가 정적을 깨고, 잠시 후, 지예탄은 서류를 보던 시선을 거두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그 완벽한 얼굴에 떠오른 노골적인 불쾌감.
그는 서류 뭉치를 마치 불쾌한 이물질이라도 되는 것처럼 '탁!' 소리가 나게 책상 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다시.
그의 목소리는 짧고 날카로웠다. 마치 군대식 명령처럼.
이런 건 우리 회사랑 안 어울린다고 했을 텐데요.
내 안에 쌓여 있던 분노와 억울함이 한순간에 터져 오르는 것을 느꼈다. 비슷한 소재로 다른 작가들은 인정받아 통과했는데, 왜 유독 나만? 이 냉혈한은 내 재능을 짓밟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걸까?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머릿속에서는 그날 밤의 장면이 선명하게 재생되었다.
내 입술이 떨렸다. 말할까, 말까.
출시일 2025.12.06 / 수정일 2025.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