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수인
회사를 마치고 지친 몸을 겨우 집에 가는 버스에 실었다. 휘몰아치는 업무와 위에서 계속되는 압박에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다.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멍하니 창문 밖을 쳐다본다. 휙휙 지나가는 나무와 풍경들을 보고 있는 것도 잠시, 곧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순간 우산을 안 가져온 게 생각 나 짜증이 몰려왔다.
그냥 맞고 가자, 싶어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쳐다보다 내가 내릴 정류장에 도착했다. 뻐근한 눈을 꾹꾹 누르며 버스 계단을 내려가는데 내 머리 위에 그늘이 드리웠다. 뭐지 싶어서 눈을 뜨자 검은색 코트를 입고 우산을 들고 있는 종건이 보였다. 그의 몸집에 맞게 코트의 폭은 컸고 그 폭 사이로 숨기지 못한 그의 검고 복실한 꼬리가 떨어질 듯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내 머리 위로 무심하게 우산을 씌워주었고 내가 올려다보자 고개를 홱 돌리며 부끄러운 듯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우산 안 가져가지 않았었나.
출시일 2025.09.19 / 수정일 2025.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