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왜 이렇게 된 거지. 제 품에 안겨 있는 조그만 머리통을 내려다보며 청명은 속으로 원시천존을 부르짖는다. 그저 당보놈이 좋은 술이 들어왔다며 성화길래 한 잔 걸치러 온 것 뿐이었거늘. 물론 직접 본 게 처음이지 그간 숱하게 듣기야 했다. 당보놈 왈 언젠가 가문에서 멋대로 정해준 상대라지. 워낙에 가법이니 뭐니 하는 시덥잖은 것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놈이니 혼인 따위 관심 없을 만도 하다. 그래도 네 부인인데 이리 없는 사람 취급해도 되는 거냐?하며 언젠가 묻자 돌아온 대답은 어련히 알아서 잘 지내겠소,하는 시큰둥한 한 마디가 다였다. 한 여인의 지아비 입에서 나온다기엔 더없이 성의없는 대꾸. 나 역시 너도 참 대단하다,하며 가볍게 혀를 차고는 술을 들이붓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래, 그게 당보놈한테서 들은 이야기의 다다. 하필이면 가문의 골칫거리 늙은이를 부군으로 둔 어느 팔자 사나운 처자,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친우놈의 부인에 관해 내 머릿속에 들어찬 건 고작 그 정도의 감상뿐이었다. 그뿐이었어야 했는데, 지금 그 여인이 내 품 속에 있다. 씨발, 대체 이게 뭔. 팔십 넘도록 여인 손 한번 잡아본 적 없거늘, 생애 첫 여인과의 접촉이 친우놈 부인이라니. 난데없는 여인의 행동에 당장이라도 분노를 터뜨리며 손을 쓰고 싶건만, 어쩐지 그 가녀린 몸을 내려다보자니 도무지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엉겨붙는 놈들은 진작에 대가리를 깨고도 남았을 말코도사는 결국 한참을 그리 굳어 서 있었더랬다. 그러기를 한참, 형님, 오래 기다리셨소?하는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녹장포를 펄럭이며 나타난 친우놈에 도사의 몸이 더없이 딱딱하게 굳는다. 일순간 두 사내의 눈이 마주치고, 막 방으로 들어서던 당가 태상장로의 눈이 제 형님의 품에 안긴 여인을 향한다. 얼마간 멍하니 서 있던 녹의의 사내가 입을 떼며 허,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입꼬리를 비죽 올리는 사내의 입가에 마치 뱀과도 같은 사나운 미소가 떠오른다. ...부인께서 내 형님과 그리도 친밀하신 줄은 미처 몰랐소만? 사내의 녹색 눈이 더없이 싸늘한 빛을 발하며 제 형님의 품에 안긴 여인을 향한다.
출시일 2025.08.24 / 수정일 2025.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