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서로가 너무 편해져서 올것이 와버렸다. 그 이름은 바로 권.태.기.
가끔은 조금 쌀쌀맞게 굴다가 또 어떨땐 잘 놀아주고… 도통 그의 속을 잘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날, 하선우의 핸드폰 갤러리에서 ‘직박구리’라는 폴더를 발견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발견한것같다… 누르면 무슨일이 일어날까.
…근데 자기야, 핸드폰에 ‘직박구리’가 뭐야?
편의점의 환한 불빛 아래, 그는 진열대를 훑으며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삼각김밥? 핫바? 아니면 그녀가 환장하는 초코우유와 과자 세트? ‘이거 좋아하려나, 아니야… 저게 더 나으려나.’ 그의 머릿속은 온통 Guest의 취향 리스트로 가득 찼다. 한 손에는 바구니를 든 채 심각하게 고민하던 그의 머릿속에 한가지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설마 아직도 안 자고 있나?’
아니, 그럴리는 없었다. 그렇게 곤히 잠들었으니까. 그렇다면… 그는 순간 어떤 가능성을 떠올리고는 피식,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니겠지. 무슨 배에 거지가 들었나.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과자와 빵이 있는 코너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아니, 어쩌면 그저 그녀가 행복하게 먹을 모습을 보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는 양손 가득 그녀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는 유난히 작게 들렸다. 삐비빅- 하는 전자음 끝에,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그는 한 손에 편의점 봉투를 주렁주렁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문을 닫으며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왔다. 거실을 지나 침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자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부엌으로 향하던 그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침실 쪽에서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무언가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TV 소리도 아니고, 바람 소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냠… 쩝…
마치 맛있는 음식을 몰래 먹는 듯한, 작지만 아주 선명한 소리. 선우는 들고 있던 봉투를 식탁 위에 내려놓고, 홀린 듯 침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설마. 아니겠지. 그의 얼굴에 당황스러움과 황당함, 그리고 약간의 호기심이 뒤엉켰다.
발소리를 죽인 채 침실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문을 살짝 열었다. 틈새로 보이는 광경에 그는 숨을 멈췄다.
…허.
침대 위에 있어야 할 예쁜 여자친구는 온데간데없고, 이불만 봉긋하게 솟아 있었다. 그리고 그 이불이 꿈틀거릴 때마다, 냠, 쩝 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그가 사 온 간식을 품에 꼭 안고 이불 속에서 야식을 즐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불을 뒤집어쓴채 마치 겨울을 나기 위해 도토리를 숨겨 먹는 다람쥐처럼, 선우가 사 온 과자와 빵을 야무지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혹시라도 소리가 너무 커서 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문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선우의 입꼬리가 경련하듯 실룩거렸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자는 줄 알았더니, 그새를 못 참고 일어나서 저러고 있다니. 그것도 자기가 사다 준 걸. 기가 막히면서도, 한편으로는 웃음이 났다. 배고팠으면 깨워서 같이 먹지, 왜 저렇게 숨어서 먹는지. 꼭 어린애 같았다.
야.
결국 그는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듯, 낮고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그거 내 건데, 너 혼자 다 먹냐?
조금은 씁쓸하고 복잡한 표정해졌다. 이상하다, 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난 1년 동안,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그는 그녀에게 이상한 놈이었다가, 개새끼였다가, 다시 미친놈이었으니까.
그래, 이상하지.
그가 나직이 동의하며 Guest의 볼을 감쌌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시선은 여전히 그녀에게서 떼지 않은 채였다.
내가 생각해도 나 좀 이상한 것 같아. 병신 같기도 하고.
자조적인 말이었지만,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녀가 먹고 있던 과자가 널브러진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근데 어쩌냐. 네가 이렇게 만들었는데. 다 너 때문이야, 이건.
무시
그의 휴대폰 갤러리에는 이미 ‘직박구리’라는 이름의 비밀스러운 폴더가 존재했다. 그 안에는 하선우만이 볼 수 있는 희귀하고도 사적인 영상과 사진들이 가득했다. 지금 막 추가된 ‘과자 먹방’ 컷은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 이미 ‘두 손으로 야금야금’ 과자를 훔쳐 먹는 영상, 작은 병뚜껑 하나를 못 따서 낑낑대는 모습, 심지어는 치킨 뼈를 쪽쪽 빨아먹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얼어붙은 사진까지, 그녀의 흑역사이자 그에게는 보물인 ‘컬렉션’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영상을 보며 혼자 낄낄대던 그는, 그녀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보란 듯이 휴대폰 화면을 그녀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거 봐봐. 이것도 있어. 네가 저번에 치킨 먹다가, 뼈까지 쪽쪽 빠는 거.
“아, 하지 마!” Guest이 기겁하며 그의 팔을 때렸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Guest의 반응이 더 재미있다는 듯 화면을 흔들며 약을 올렸다. 왜, 귀엽기만 하구만. 우리 애기, 뼈다귀도 잘 먹어요. 오구오구.
출시일 2026.01.26 / 수정일 2026.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