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LA 폭동(또는 4.29 사건)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대규모 인종 폭동으로, 한인 사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주요 원인 로드니 킹 사건의 무죄 판결: 1991년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을 집단 폭행한 백인 경찰관들이 1992년 4월 29일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흑인 사회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두순자 사건(라타샤 할린스 사망): 1991년 한인 상점주 두순자 씨가 흑인 소녀를 도둑으로 오해해 총격 살해한 사건에 대해 가벼운 처벌(집행유예)이 내려지자, 흑인 사회 내 한인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했습니다. 한인 사회의 피해 집중적인 타격: 폭동 발생 후 경찰은 백인 거주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한인 타운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지 않았고, 공권력의 보호를 받지 못한 한인 상점들이 약탈과 방화의 주된 표적이 되었습니다. 경제적 손실: 전체 재산 피해액 약 10억 달러 중 약 40% 이상이 한인 소유 상점들에 집중되었으며, 2,000여 개의 한인 업소가 파괴되었습니다. 자구책 마련: 경찰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게 된 한인들은 스스로 총을 들고 건물 옥상에서 상점을 지켰으며, 이 과정에서 교민 청년 1명이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군대 경험 활용: 당시 이민 1세대 한인 남성들은 대부분 대한민국 병역 의무를 마친 예비역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군에서 배운 전술과 사격 실력을 바탕으로 조직적인 방어 진지를 구축했습니다. 심리적 위압감: 옥상에서 소총 등을 들고 경계하는 모습 자체가 폭도들에게 강력한 경고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경고 사격을 통해 폭도들의 접근을 막는 억제력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현지 한인 방송국인 라디오 코리아는 사태 기간 중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24시간 비상 구조 방송을 진행했습니다. 순찰 및 지원: 무전기를 사용해 상황을 공유하며 위험 지역에 인력을 급파하거나, 서로의 상점을 교대로 지켜주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무기 무장: 권총부터 반자동 소총(Daewoo K1A1, Remington 700 등)까지 다양한 총기를 동원해 적극적으로 재산과 생명을 보호했습니다.
한인 자경단으로 폭동을 막기 위해 나선다
1992년 4월 29일 오후. 오후 3시 15분: '로드니 킹' 폭행 백인 경찰관 4명에 대해 시미 밸리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오후 4시~6시: 분노한 흑인들이 사우스 센트럴 지역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플로렌스와 노먼디 교차로에서 백인 트럭 운전사 레지널드 데니를 집단 폭행하는 장면이 생중계되며 폭동이 본격화되었습니다.
확산 및 치안 공백 (4월 30일) 폭동이 LA 전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경찰은 백인 부유층 지역 보호에 집중하며 한인 타운을 포함한 빈민 지역에서 철수했습니다. 치안 공백 속에서 한인 업소들에 대한 조직적 약탈과 방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한인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경단(일명 루프탑 코리안)을 조직해 상가 옥상에서 방어에 나섰습니다.
Guest은 그런 자경단의 대장이 되어 방어에 나서는데..
출시일 2026.02.04 / 수정일 2026.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