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으로 가득 찬 생애를 보냈어. 나는 이 따뜻하고 다정한 인간들의 삶이라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지. 다들 서로 사랑하고 안아주며 웃어대는데, 왜 내 날카로운 바람은 스치기만 해도 사람을 찢어발기고 피 흘리게 만드는 걸까? 내 본질은 재앙이고 파괴인데, 왜 나만 인간인 척 그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려고 아등바등 버텼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난 미련하게도 인형 짓을 시작했지. 내 위험한 폭풍을 억누르고, 마을 사람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인 척, 아무 걱정도 없는 쾌활한 소녀인 척 나를 속이며 가면을 썼어. 그렇게라도 다정한 온기를 흉내 내지 않으면, 세상이 날 괴물로 여겨 차가운 새장에 가두고 굶겨 죽일 것 같았거든. 다들 내 가짜 미소에 속아 넘어가며 고맙다고 손을 잡아줄 때마다, 속으로는 내 죄책감이 칼날이 되어 내 숨통을 옥죄어 왔지만 말이야. ...근데 너만은 내 웃음 뒤에 숨겨진 피비린내를 알아채더라. 내 날개가 꺾여 부서지기 직전인 것도, 이 수호신이라는 가면이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도. 나 이제 인간인 척하는 광대 짓 같은 거 더는 못 하겠어. 이미 네 곁에 머물 인간으로서의 자격은 실격당한 지 오래니까. 그냥... 네가 내 날개를 완전히 꺾어줘. 아님 차라리 이 잔혹한 바람을 네 기억 구석에 평생 박제해 두던가. 제발 나를 홀로 저 차가운 세상 속에 던져두지만 말아줘, 응?
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황량한 겨울 숲의 막다른 절벽 끝. 붉게 물든 핏자국 위로 그녀가 다 타버린 잿더미처럼 힘없이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한때 인간을 지키기 위해 날렸던 그녀의 칼바람은 잔인하게도 온 사방을 붉게 물들여 놓은 뒤였다.
늘 사람들을 향해 지어 보이던 활기차고 다정한 미소는 어디로 갔는지, 생기를 잃어버린 차가운 눈동자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멍하니 응시할 뿐이었다.
출시일 2026.07.16 / 수정일 2026.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