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15일 이 세상의 시간은 이날을 기점으로 흐른다 6시경 녹담고등학교 인근 아파트단지 건물 아래에서 고등학생정도의 나이로 추정되는 시체 한구가 심각하게 훼손된채 발견되었다 시체가 발견된 시각은 11월 15일 6시 37분경 부패가 크게 진행되지 않은것으로 보아 시신의 사망시점은 발견시각과 거의 동일할 것으로 추정된다 옷가지 아래로 감춰지는 허벅지 위쪽과 허리 배쪽에는 다수의 자해흔으로 추정되는 생체기가 발견되었고 두개골은 회복이 어려울정도로 심각한 골절이 나타났다 목뼈와 팔다리 관절이 꺾여있는 등으로 보아 자살일 가능성을 피할 수 없다고 수사측에서 말하고 있다
나의 하나뿐인 가족 고등학교 1학년의 남동생 사실 너는 알고있었을거야 학교에서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ㅡ처음으로 누나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기괴하게 꺾여버린 팔다리를 보면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분명 아는 얼굴인데도, 처음보는 사람처럼 낮설었다고. 시체를 발견한 본인 본인의 말로는 알바를 다녀왔다가 집에 왔을때 평소에 느껴져야할 따뜻한 밥냄새와 온기가 아닌 기이할 정도로 서늘한 온도가 느껴졌다 차가운 바람이 누나의 방안에서 현관까지 불어왔다 ㅡ하나도 닮지않은 쌍둥이인 그는 평소 학교폭력을 당하는 누나의 모습을 끝까지 모른척 했다 부모님은 없다 고아원에서 자립해 피가 섞이지 않은 남매가 되었다 이불속에서 어른이 될 우리의 모습을 상상하던 어릴적은 꽤 행복했던 것 같은데
나의 유일한 친구 고등학교 1학년의 겁이 많았던 너 나와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내손을 잡고 울어주던 너는 사실 나와 벼랑에 나란히 서줄정도로 다정한 사람은 아니였나봐 ㅡ너가 보여준 상처들이 너무 빨갛고 깊어서, 네가 그 이상으로 어떻게 되기라도 할가봐 겁이났다 딱히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저 너를 안심시켜주고 싶었다. 사실 정말 안심하고싶었던건 내쪽이였을지도 모르겠다 넌 나와 함께 죽어주겠다고 했음에도 마지막에는 나를 홀로 남긴채 도망간 사람이였다 그래도 네가주는 사랑이 좋았어 때로는 살아있고 싶게 만들어줘서 고마워
시체신고를 접수받은 수사팀 결찰아저씨 요근래 자살접수가 많아져 자살한 시체를 보는일이 조금 무뎌졌다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이 그녀를 벼랑으로 몰아붙였는지
항상 무리를 지어다니는 외로운 아이라고 생각해 그래도 네가준 상처는 많이 아팠던 것 같아 ㅡ괴롭히던 여자애가 죽어버렸다 바른사람을 연기했지만 너때문에 매일이 불안하다
장례식 일정도 못잡고 있다. 매일같이 1학년층에 드나드는 푸른 제복이, 보일때마다 나는 정신이 나갈 것만 같다.
유가족이라는 이름이 나에게 새로이 지어졌다. 내 이름을 모르던 우리학교 학생도 나의 새로운 이름으로 내 얼굴과, 나의 이야기들을 얼추 알고있는것 같았다.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아주 자주 꿈에 나오는 누나는 눈이 터지도록 나를 보고있었다.
그리고 누나의 비릿한 피냄새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서.
소란스럽다. 사실 나는 무슨일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평소에도 이런저런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학교만큼은 빠지지 않던 네가 어제오늘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눈에 띄는것은 푸른 제복ㅡ 금색빛의 새가 달려있는.
이 시골촌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실종신고는 빈번하다. 그리 희귀한 광경도 아니였다. 보나마나 어딘가 산에서 표류하고 있겠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그리고 내일이 되면 다시 돌아올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참 시끄러운 학교다. 경찰 아저씨들 조금 드나들었다고 이렇게나 정신사나워지는 녀석들.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르면서 멋대로 떠들어대는 녀석들.
얘들아.
나는 칠판앞에 서서 분필을 집어 들고 누군가의 이름을 쓴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이 애랑 친한사람 있어? 친하지 않더라도 평소에 서로 아는사이였던 사람?
손이 달달 떨린다. 손바닥이 식은땀으로 어느새 축축해져있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척 바짓춤에 손을 슥 하고 닦으며 다른 놈들과 다를바 없이 멍청한 표정으로 저 경찰을 바라본다.
출시일 2026.06.25 / 수정일 2026.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