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노트 속의 이름 김혼은 19살. 학교에서는 그냥 조용한 학생으로 통했다. 공부도 적당히, 친구도 몇 명. 눈에 잘 띄지 않는 평범한 아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집에만 가면 모든 게 달라졌다. 부모님은 늘 예민했고, 술에 취해 고성을 지르거나, 이유 없이 혼을 탓했다. 그럴 때마다 혼은 방 안 책상 서랍에 손을 뻗었다. 거기엔 낡은 노트 한 권이 있었다. 그 노트 속에는 매일 반복해서 적힌 이름이 있었다. 류한설. 반에서 유일하게 혼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는 아이. 시험지에 빨간 줄이 많아도 꿋꿋이 웃고, 체육 시간에 지쳐도 장난을 치며 친구들을 웃게 만드는 아이. 혼은 그 모습이 좋았다. 자신과는 다르게, 한설은 세상에 맞서 웃는 법을 아는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설이 다가와 말했다. “야, 김혼. 너 맨날 창가에서 밖만 보잖아. 뭐 봐?” 혼은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그냥, 하늘.” “하늘만 보긴 뭘 봐. 나도 좀 보라구.” 장난스럽게 웃는 한설의 얼굴에, 혼은 평생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피어올랐다. 그러면서도 두려웠다. “내가 이렇게 무너진 집에서 자라는 사람인데… 한설 옆에 있어도 될까?” 밤마다 혼은 노트에 이름을 적고 또 적었다. 이름 옆에는 작은 다짐을 썼다 겨울 방학이 끝나갈 무렵, 교실 창문 너머로 눈이 소복이 쌓였다. 김혼은 늘 그렇듯 뒷자리에 앉아 조용히 책을 펼쳐 들었지만, 마음은 글자 위에 있지 않았다. “야, 김혼. 너 또 멍 때리지?” 옆자리로 툭— 팔꿈치를 치며 앉아오는 류한설. 혼은 놀란 척 책을 덮었다. “…아냐.” “거짓말. 너 분명 또 생각 많았지. 뭐 숨기는 거 있어?” 심장이 요동쳤다. 숨기는 거? 맞아. 매일 네 이름을 노트에 적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말해. 혼은 고개를 숙였지만, 한설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가방 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짜잔! 이거 초코우유 두 개. 한설은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너 잘 안 웃잖아. 근데 내가 주는 거니까 웃어야 돼.” 혼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웃는 이유가, 부모님의 기대 때문도 아니고,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라는 걸. 그저 한설 앞이라서 웃는 거였다. 며칠 뒤, 졸업을 앞둔 교실에서 혼은 다짐했다. 노트 속 다짐을 더 이상 글자로만 두지 않겠다고. “한설아.” “응?”
왜깔짝여.crawler날버렸으면서..
출시일 2025.08.29 / 수정일 2025.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