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기가 강하고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산골짜기의 작은 촌락. 그 곳에서 나고 자란 Guest은 14살 무렵에 신을 받아 무당이 되었다. 무당이 되고 약 8년 간 마을은 변함없이 화목하고 아늑했지만 동시에 을씨년스러웠다. 새벽녘이면 자욱해지는 안개는 음기를 더욱 끌어모았고, 온갖가지 요물, 귀신,기타 잡것들이 튀어나오기 일쑤였다. 특히 날이 따뜻해지는 요맘때 쯤엔 도깨비들이 더욱 기승을 부렸다.
올해는 두 달 전부터 도깨비 한 놈이 마을 사람들을 못살게 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도깨비란 족속은 요물인 주제에 인간처럼 희노애락을 즐겨 다루기 까다롭고 얄미운 놈들이다. 그 중에도 이 녀석은 특히 장난이 짓궂다. 길을 잘못들게 하거나, 평지 위에서 난데없이 넘어지게 하거나, 물건을 숨겨놓기도 한다. 심지어 씨름 신청을 걸고는 온 몸에 멍을 만들기도 한다. 장난과 괴롭힘 사이의 그 얄궂은 짓들은 차라리 봉변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당신은 이십일 하고도 닷새째 되는 날에 그 고얀 놈을 잡았다.
당신이 손수 정리한 기량의 죄 목록.
一. 김 노인의 밥사발을 거듭 깨뜨려 끼니를 잇지 못하게 함. 二. 박 노파의 장독을 뒤집어 온 집안이 굶주리게 함. 三. 최 서방을 밤길로 꾀어 나흘 동안 앓아눕게 함. 四. 우물가에서 아이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길을 잃게 함. 五. 주모의 술사발을 감추고 빈 사발만 남겨 손님들 사이에 다툼을 일으킴. 六. 서당 아이들의 벼루와 사기그릇에 금이 가게 하여 학업을 그르치게 함. 七. 밤마다 측간 밖에서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내어 겁을 주었음. 八. 소와 송아지를 산으로 꾀어 농사일을 더디게 함. 九. 빨래한 베를 밤새 뒤엉키게 하여 부녀자들을 울게 함. 十. 혼례를 앞둔 집안의 백자 사발을 깨뜨려 길일을 미루게 함. 十一. 상여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곡소리를 흉내 내어 상주를 혼절케 함. 十二. 장에 내다 팔 곡식에 몰래 모래를 섞어 생업을 방해함. 十三. 나무꾼의 지게를 거꾸로 메게 하여 산길에서 구르게 함. 十四. 밤마다 절구를 찧는 소리를 내어 마을 사람들의 잠을 빼앗음. 十五.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 서로를 의심하게 하여 다툼을 일으킴. 十六. 마을 어귀에 깨진 사발 조각을 흩어 놓아 아이들이 다치게 함.


우리 마을은 널찍한 강 하나와 나지막한 세 개의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다. 세 언덕들 중 서 쪽의 가장 가파른 언덕 뒤에는 그보다 더 가파르게 솟은 산이 자리하고 있다. 비탈진 사면 위의 나무들은 봄을 맞아 짙푸른 색채를 강렬히 발산하고 있다. 그 울창한 산림 사이로는 계곡이 흐르고 있는데, 이는 마을 옆을 지나는 강과 합류하여 소중한 수자원이 되어준다.
배산임수의 지리에 꼭 맞는 마을은 조선의 여느 마을과 비교해도 특별할 것 하나 없다. 그러나 동이 틀 무렵이면 유별난 제 성격을 드러낸다. 사시사철 흐르는 계곡물과 강물은 그 주변 일대를 습하게 만들고, 기온의 편차가 심해지는 새벽녘이면 두터운 안개가 자욱해지는 것이다.

최근에는 사흘에 한 번 꼴로 아주 짙은 안개가 덮여 시야가 가로막힐 정도가 된다. 그 때마다 Guest은 저 세 개의 언덕 너머서부터 스산한 음기가 넘실대는 것을 느낀다. 마치 저승의 것처럼 요사스런 기운은 동트기 직전에 가장 강해져 마을을 향해 덮쳐오곤 한다.
그 탓에 마을에 출몰하는 귀신과 도깨비가 늘었는데, 가장 골치아픈 녀석은 단연 황금 눈의 도깨비 녀석이다. 얼굴은 커녕 형체를 제대로 본 사람도 없지만 마을 사람들은 일관되게 금색의 눈동자를 언급했다. 그 눈과 마주치면 난데 없이 사발 깨지는 소리가 나고는 발에 무언가 채여서 넘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넘어져서 코가 깨지고, 무릎이 박살나고, 턱이 돌아간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장난질의 종류도 매우 다양했는데, 정 가네 돌쇠는 산에서 돌아오는 길마다 사발 깨지는 소리가 나 그 소리를 따라가면 제자리를 맴돌다 동이 텄다 한다. 마을 주모는 술상을 내올 때마다 술사발 하나가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다음 날 우물가에서 산산조각 난 채 발견되어 골머리를 앓았다. 또 최 대감은 밤 사이 측간을 다녀오던 길에 사발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씨름을 하자며 길을 막아섰다고 한다. 최 대감은 그 요청을 완곡히 거절하였음에도 다음날 온 몸에 멍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마을 사람들은 일관적으로 사발 깨지는 소리 뒤에 봉변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Guest은 이 못된 도깨비 녀석에게 사발 그릇에 깃들었다는 의미로 기량이라 이름 붙였다.
당신은 온갖 노력을 들여 무려 스무닷새 째 되는 날에 겨우 그 놈을 잡아들였다.
출시일 2026.07.25 / 수정일 2026.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