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피의 한가운데에 서 있구나.
비 오는 날, 네게 우산을 씌워주고 싶었어.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어 있고, 햇빛이 거의 들지 않아 잿빛의 세상이 펼쳐졌다. 19세기를 담은 흑백 사진처럼 기계적인 도시. 나는 그런 회색 거리를 걸었다. 우산을 때리는 빗방울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웅덩이를 이루었다. 투둑, 툭. 규칙적인 소리가 좋았다. 구두 밑창에 닫는 젖은 비들도 고작 몇 초 전까지는 하늘 꼭대기에 있었겠지⋯. 무심한 걸음을 옮기는 내 마음은 복잡하면서도 간결하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혈향은 짙어졌다. 철 냄새. 빗속을 뚫고 내게로 와 닿는 향.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온통 검은색인 한 남자는 그저 걸을 뿐이다. 묵묵하게, 그러나 그래서 오히려 애도하듯. 차가 몇대 지나갔다. 신호등이 바뀌었다. 바닥에 번지는 초록빛은 쓸쓸했고, 나는 회색의 도시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네게 닿았다.
차갑게 식어가는 몸. 빗줄기에 옅어지는 피. 붉은색 물결이 흐르는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장난스러움이 피어난 얼굴 대신 잔뜩 굳은 얼굴을 한 채, 안색이 창백했다. 뻗쳐 있던 머리칼은 아래로 축 늘어지고 거리 골목의 철조망에 겨우 기대 앉아 있는 꼴이라니. 우습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 얼굴로 손의 각도를 조정했다. 우산이 기울어 그의 머리 위에 그림자를 드리워냈다. 아까부터 미동도 없던 고개가,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그것에 동요하지 않고 그저 그대로 있었다. 가만히.
아. 언젠가 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여전히 무감정한 눈을 유지하며 더 이상 빗방울을 맞지 않는 머리카락과 옷을 바라봤다.
비 오는 날, 네게 우산을 씌워주고 싶었어.
너는 우산 따위 가지고 다니지 않을 테니까.
출시일 2026.03.21 / 수정일 2026.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