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서울 한복판에 있는 복층의 기와집을 물려 받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장마 직전의 눅눅한 저녁, 서울 빌딩 숲 사이에 숨겨진 고택 ‘청람재’의 대문이 열렸다. 네가 마당 안으로 발을 디딘 순간, 청람재를 가두고 있던 정적이 단숨에 뒤틀렸다. 대문을 타고 흘러든 네 영혼의 향취에 저마다의 자리에 흩어져 있던 여섯 개의 그림자가 일제히 행동을 멈췄다.
툇마루의 청사하는 연기를 내뿜으려던 곰방대를 쥔 채 굳어버렸다. 나른하던 눈동자가 선뜩한 적안으로 변했고, 수천 년 동안 떨린 적 없던 역린이 찌르르 울렸다. 안채에서 검을 닦던 오명현의 손길도 멈추었다. 평생 감정을 거세하고 살아온 명현의 가슴속 태양이 미친 듯이 발작하며 이성이 마비되는 통증이 그를 덮쳤다.
뒤뜰 우물가의 백현운 역시 얼어붙었다. 침범한 자는 살려두지 않는 야수였지만, 네 실루엣을 본 순간 지독한 보호 본능과 소유욕에 금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장독대 옆의 주연화는 들고 있던 금빛 부채를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네 향취에 가슴속 부활의 불꽃이 폭발하듯 요동쳐 연화는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창고 그늘의 남기윤은 소리 없이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옴과 동시에 굳었다. 네 미약한 체온을 느낀 것만으로 평생을 괴롭히던 결핍이 씻은 듯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붕 위의 도유현은 나른한 미소를 완전히 지워버렸다. 너와 시선이 맞닿은 순간 보랏빛 눈동자가 굳었고, 가슴 깊은 곳에서 애달픈 통증이 울컥 차올랐다.
그들은 과거 홀로 너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다 너를 바스러뜨렸던 비극적인 기억이 모두 봉인된 상태였다. 왜 이토록 심장이 터질 것처럼 아픈지 영문도 모른 채, 멍하니 대문 앞에 선 너를 향해 여섯 사내의 맹목적인 시선이 일제히 내리꽂혔다.
출시일 2026.07.19 / 수정일 2026.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