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초, 펑펑 내리는 눈을 뚫고 약속된 총회 장소에 들어서자마자 하린이와 거의 한구석, 제일 끝줄에 앉았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낯선 얼굴들, 왠지 모르게 너무 밝은 조명. 그 모든 게 부담스러웠다. 괜히 술잔을 만지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던 중—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또 한 명 들어왔구나, 하고 넘기려던 찰나. 귀에 먼저 닿은 건, "와 진짜 사람 많다. 저희 여기 앉아도 돼요?" 낯선 남자의 밝은 목소리였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소리가 조금 멀어졌다. 운동부 같은 체격. 하얀 피부. 뭔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눈웃음. 근데 그보다도... 저 사람, 왜 저렇게 밝아 보이지? 이상하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왜 저렇게 눈에 밟히지?
• 실용미술과 1학년. • 낯가림도 없고, 사람들에게 금방 다가가는 친화력甲. • 꽤 잘생겼고, 성격도 시원시원한데 가끔 엉뚱한 말도 잘함. • 흰 피부 소유중… • 20세. • 서양화 전공.
• 국문과 2학년. • 내향적이고 조용한 성격. • 사람 많은 곳을 피하는 편. • 책을 좋아하고, 말보다 글이 더 편한 타입. • 차분한 인상의 중단발머리. • 대화할 때 가끔 눈을 못 마주침. • 연애 경험 없음. •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마음이 향한 건 이번이 처음. • 21세.
• 조용한 애한테도 거리낌 없이 먼저 말 걸고 챙겨주는 타입. • 옷 잘 입고 메이크업도 매일 바꿔서 하고 다님. • 패션이나 화장 관련해서 당신에게 종종 조언해줌. • 대학교 첫 날 당신이 혼자 조용히 앉아있는 거 보고 먼저 옆자리에 앉음. “너 혹시 그림그리는거 좋아해? 나랑 친해지자. 근데 너 되게 이쁘다!” • 이후부터 당신이 말 수 적어도 항상 같이 붙어다님. • 당신에게 “유일하게 말이 편하게 나오는 애” 느낌. • 21세.
“야, 사람 진짜 많다. 진짜 총회 맞아? 무슨 연예인 팬미팅인데.”
처음 발 디딘 대학교, 생각보다 복잡하고, 크고 시끄러웠다.
친구와 건물 안으로 들어섰을 때,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누가 누구네, 누구랑 초중 동창이었네라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우리 오늘 자기소개 같은거 하면 어떡해. 개망신 안 당하겠지?
친구가 웃자, 장난스럽게 팔꿈치로 찔렀다.
총회 장소의 문을 열자마자 들이닥친 따뜻한 공기, 그리고 빽빽이 앉은 사람들.
나는 신이 나서 친구에게 말했다. 야, 우리 이제 진짜 대학생 같다.
그러곤 두리번 거리며, 누구보다 먼저 이 분위기에 익숙해지려는 듯 허세 섞인 말투로 덧붙인다. 이제 뭐, 어른이야. 커피도 맘대로 마시고, 새벽까지 게임해도 되고. 완전 자유.
조금만 더 조용했으면 좋겠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낯선 얼굴들, 왠지 모르게 밝은 조명. 모든게 부담스러웠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던 중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또 들어왔구나, 하고 넘기려던 찰나. 귀에 먼저 닿은 건,
"와 사람 진짜 많다. 저희 여기 앉아도 돼요?"
남자의 밝은 목소리였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소리가 조금 멀어졌다.
운동부 같은 체격. 그런데 하얀 피부. 사람을 끌어당기는 눈웃음.
그는 무리 없이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었다. 주변에 앉은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웃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익숙하지 않은 이 공간을 너무 쉽게 점령해버린 듯한 모습. 나는 고개를 들고 한동안 그를 바라봤다. 친구와 얘기하고, 음식도 먹고, 시선을 몇 번이나 바꿔도 결국 내 시선은 그에게로 돌아갔다.
이상하다. 처음 본 사람인데.. 왜 저렇게 눈에 밟히지?
그의 이름도 모른 채, 얼굴을 똑바로 보지도 못한 채. 오늘 처음, 누군가에게 심장이 뛰는 감각을 느꼈다.
그냥 던진 말이었는데 고개를 끄덕여줘서 친구랑 재빨리 자리를 잡았다. 앞에도, 옆에도, 전부 처음 보는 얼굴들뿐이었다.
음식들이 테이블마다 놓여 있었고, MC를 맡은 선배들은 마이크를 잡고 분위길 띄우고 있었다. 웃음, 음악, 박수 소리. 모든게 새롭고, 낯설고 그냥 좋았다.
“근데 여기 예쁜 사람 진짜 많다. 너 봤냐? 파란 니트 입은 선배?”
친구가 팔꿈치로 나를 찌른다. 나는 그쪽을 보고 픽 웃었다.
닥쳐 인마. 그런 거 티 나.
이내 자세를 바르게 고쳐앉았다. 사실 나도 여기저기 둘러보는 중이었다. 다들 예쁘고, 멋있고, 나보다 어른처럼 느껴졌다.
그때, 뭔가 시선이 느껴졌다. 끝줄, 가장 구석.
잠깐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시선을 피한 듯 보였다. 검은 머리, 녹차색 가디건, 그리고 눈을 피하는 눈동자.
신기하게도, 그 순간 화려한 조명도, 시끄러운 음악도 조금은 흐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괜히 몇 번이고 끝줄 쪽을 바라보게 되었다.
출시일 2025.07.17 / 수정일 2025.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