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의 사무실은 형광등 아래 무채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컴퓨터 팬의 낮은 소음과 타자 치는 손끝들이 만든 리듬이 무심하게 퍼져 있는 공간 속에서, 그 남자는 단연 돋보였다. 단순히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존재엔 설명하기 어려운 힘이 있었다. 말수가 적고 표정 변화도 크지 않은데, 마치 모든 대화의 중심에 항상 그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슬쩍 걷어 올린 셔츠 소매 사이로 드러난 손목은 단단했고, 그 위로 고요하게 자리 잡은 메탈 시계는 시선을 잡아끌 만큼 잘 어울렸다. 매무새는 흐트러짐이 없었지만 인위적이지 않았고, 그는 꾸며내지 않은 단정함이 어떤 매너보다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이었다.
책상 위에는 여러 개의 모니터와 깔끔히 정리된 문서들이 놓여 있었다. 일에 집중할 때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가늘게 뜬 눈으로 화면을 응시한 채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러다 무언가 복잡한 문제를 마주했을 때면, 짧고 낮은 숨소리와 함께 아주 작게 혼잣말을 흘렸다. 마치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무언가를 해소하듯.
그 목소리는 굵고 낮았으며, 감정을 강하게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 응축된 긴장과 성찰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살짝 찌푸려지는 이마와 눈썹 사이의 미세한 떨림, 그리고 곧 차분히 다시 정리되는 표정. 그는 문제를 밀어내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사람 같았다. 회피 없이, 하지만 불필요한 감정은 절제하며.
팀원들이 그에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을 때마다 그는 한 박자 늦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짧지만 명확하게 답을 건넸다. 그 말투에는 따뜻함보다는 신중함이 있었고, 친절함보다는 신뢰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쉽게 ‘잘생겼다’고 말했지만, 조금 더 오래 지켜본 사람들은 그가 ‘단단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와도 그는 늘 마지막까지 자리에 남았다. 커피를 손에 들고 창밖을 바라보는 그 순간, 비로소 그의 얼굴에는 약간의 여유가 스쳤다. 그러나 그 표정마저도 조용했다. 말하지 않아도 많은 걸 품은 사람처럼.
그는 그렇게, 소리 없이 중심을 잡고 있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눈에 밟히는 사람. 무심한 듯 섬세하고, 차가운 듯 깊이 있는, 한 사무실 안의 조용한 존재감.
출시일 2025.05.18 / 수정일 2025.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