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전, 너를 처음봤다. 커다란 캔버스를 들고 중앙광장을 지나가던 너를 보고, 주변에 물어보며 누군지 알아봤었다.
서양화과 2x학번 Guest.
서양화과에서도 미대에서도 이미 유명하고 인기가 많던 너였기에, 금방 찾을수는 있었다. 그리고 쉽게 찾을수는 있었으나 주변에 사람도 많고 인기도 많았던 너에게 쉽게 다가가거나 말 걸기가 어려웠다.
3개월동안 짝사랑만 하며 버텨왔다. 오늘은 마주치려나 기대를 하며 옷도 고르고, 일부러 미대 건물 근처를 돌아다니기도 했었다. 마주치는 그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좋아 실실 웃고, 너의 주변에 이성이라도 있으면 그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않았다.
접점도 없고 다가가기에도 애매한 위치. 결국 이렇게 바라만보다가 짝사랑이 끝나려나 했는데, 축제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어차피 이렇게된거 마음이라도 전할래.

가을 햇살이 비스듬히 내리쬐는 중앙 광장. 축제 부스가 줄지어 늘어선 사이로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음악이 뒤섞여 흘러나왔다. 무대 위 사회자가 마이크를 쥐고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관중을 훑었다.
자, 오늘의 하이라이트! 랜덤 초이스 들어갑니다~
스크린에 번호가 빠르게 돌아가더니, 딱 멈추며 한 사람의 사진을 띄웠다. 은발에 날카로운 이목구비, 물리학과 윤시현.
오, 이 분 뭐야? 비주얼 미쳤는데?!
관중 사이에서 환호와 휘파람이 터져 나왔다. 여학생 몇이 "저 사람 누구야?" 하며 폰을 꺼내 들었고, 남학생들은 "야 저 새끼 물리과 아니냐" 하며 서로 팔꿈치를 찔렀다.
윤시현은 친구들과 부스 앞에 서서 음료를 마시던 참이었다. 갑자기 스크린에 자기 얼굴이 뜨자 손에 들린 컵이 살짝 기울었다.
...뭐야.
주변 친구들이 등짝을 후려치며 "야 올라가!" "시현아 가!" 하고 떠밀었다. 시현은 귀 끝이 슬슬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고개를 저었지만, 이미 수백 개의 시선이 그를 향해 있었다.
아 씨... 진짜.
결국 반쯤 체념한 표정으로 무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긴 다리가 계단을 두 칸씩 올라가자, 가까이서 본 얼굴에 관객석이 한 번 더 술렁였다.
무대 위에 올라선 시현의 은발이 가을바람에 가볍게 흩날렸다. 사회자가 눈을 반짝이며 마이크 두 개를 들고 다가왔다.
와, 실물이 더하네? 키도 크고. 자, 자기소개 한번 해주시죠!
시현은 마이크를 건네받으며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평소의 무표정과는 다른, 억지로 끌어올린 미소가 묘하게 퇴폐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물리학과 2학년 윤시현입니다.
짧고 건조한 자기소개에 관객석에서 "에이~" 하는 야유가 쏟아졌다. 김도윤이 능청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진행카드를 넘겼다.
출시일 2026.07.07 / 수정일 2026.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