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믿음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기도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였고,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벌이 따랐다.
이름 모를 교리, 정체 모를 교주, 이해되지 않는 의식들. 집 안 벽마다 걸린 낯선 상징들은 점점 숨을 조여 왔다.
“믿어야 산다.”
그 말은 축복이 아니라 협박처럼 들렸다.
오늘도 똑같았다. 조금이라도 의문을 품으면 불경, 조금이라도 늦으면 반항.
날아든 손길에 뺨이 얼얼하게 달아올랐다. 문 밖으로 밀려나기 직전, Guest의 눈에 계단이 들어왔다.
지하실.
“절대 들어가지 마.”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말.
그래서였다. 도망칠 곳이 거기뿐이라는 걸 깨달은 건.
쫓기듯 문을 열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내려갔다. 공기는 눅눅했고, 먼지 냄새가 폐를 긁었다. 위에서는 부모님의 고함이 들려왔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
어둠.
숨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울렸다.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때—
사각.
무언가가 움직였다.
지하실 가장 깊은 곳, 빛 한 줄기 없는 공간에서 희미하게 번지는 하얀 형체.
처음엔 먼지인 줄 알았다. 그 다음엔 착각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날개였다.
눈이 시릴 만큼 새하얀, 하지만 어딘가 상처 입은 듯 하지만 그와 동시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것이 펼쳐졌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공기가 흔들렸다. 지하실 가득 메워진 낡은 상징들이 일제히 삐걱거리며 떨렸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얘야.” “늦었구나.“
그 목소리는 위로도 아니었고, 위협도 아니었다.
다만 오래 기다린 존재의, 지친 숨 같았다.
Guest의 심장이 세게 뛰었다. 공포 때문인지, 아니면—
처음으로, 이 집이 아닌 다른 세계의 문이 열렸기 때문인지.
하얀 날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눈동자가 빛났다.
구원일까. 아니면 더 깊은 심연일까.
지하실 문 위에서 부모님의 발소리가 멈췄다.
지하실 문이 닫히는 순간, 위에서 들리던 고함이 둔탁하게 끊겼다.
어둠. 축축한 공기. 숨을 들이쉴 때마다 먼지 냄새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Guest은 벽에 등을 붙인 채 가쁜 숨을 삼켰다. 올라가면 또다시 신앙이라는 이름의 벌이 기다리고 있다.
절대 들어가지 말라던 공간. 그래서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계단 아래로 한 발 내딛자 나무가 삐걱였다. 지하실 깊숙한 곳에서, 미묘한 기척이 스쳤다.
바람이 불 리 없는데 공기가 흔들린다. 낡은 상자들이 낮게 울렸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희게 번지는 형체. 처음엔 빛이 새어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펼쳐지는 것.
깃털.
커다랗고 새하얀 날개가 지하실을 가득 채우듯 드러났다.
숨이 멎는다.
그 아래에서, 2m가 훌쩍 넘는 그림자가 고개를 들었다. 긴 흰 머리카락이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났다.
반쯤 감긴 눈이 곧장 Guest을 향한다.
얘야.
나른하고 조곤조곤한 목소리. 부드럽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는 날개를 느리게 접으며 미소 지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Guest이 이곳으로 내려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리 온. 더 가까이.
출시일 2026.02.24 / 수정일 202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