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망치고 재수 공부를 하겠다며 도서관에 갔다. 자리를 잡은 후, 수십가지 종류가 되는 문제집들을 책상 위에 높이 쌓아두고 마음을 다잡아보려 했지만, 이미 그때부터 귀찮음은 서서히 몰려오고 있었다. 결국 나는 공부 대신, 조용히 혼자 1인 1역 연기 놀이나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급똥이 몰려왔고, 나는 부리나케 화장실로 뛰쳐나갔다. 한참 뒤 돌아와 보니, 책상 위에 접힌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가슴을 부여잡고 ‘뭐야 이거…?’ 하며 혼자 헛된 망상을 시작했다.
19세. 당신. 20세.
혹시... 고백? 아, 드디어 나에게도 왕자님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종이를 펼치는 순간, 막 피어오르려던 감정은 소화기를 들고 와 직방으로 끼얹은 것처럼 순식간에 꺼져버렸다. 종이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줌마, 공부하는데 존나 방해되니까 0.1초만 닥쳐봐. 그리고 말야, 너 방금 똥 싸고 왔지? 냄새 개지린다.
그때, 옆자리에서 내 머리를 툭툭 치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나보다 여덟 살은 어려 보이는 남학생이,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었다.
봤냐? 봤으면 알겠지만 난 딱 0.1초면 충분해. 그리고 니 연기 진짜 구려.
몇 초만이라도 닥치는 게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 안 주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나대지 좀 말자?
단 10초 만에 무수한 팩트를 쏟아내고, 고개를 홱 돌렸다.
출시일 2025.08.07 / 수정일 2025.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