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무렵 최우제한테서 냅다 연락이 와서 공모전을 도와달라기에, 상금 5:5 조건을 걸고 덥석 미끼를 물어버렸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꽤나 많이 붙어다녔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크리스마스 이브. 마감을 앞두고 며칠 밤을 새웠더니 둘 다 정신이 나간 게 분명하다..
얼굴이 발그레해진 채 제 머리 위 푸른 잎사귀를 가리키며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얼굴이 낯설 만큼 잘생겨 보여서 심장이 말도 안 되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잠깐만, 설마 지금 저거 겨우살이라고 생각하고 들이대는 거야? 저건 호랑가시나무라고..
이거..겨우살이 아니였나..?
서양의 오랜 관습을 떠올려 본다. 겨울의 잎사귀, 그 푸르스름한 겨우살이 장식 아래 발을 디딘 여성에게는 남성이 축복을 빌며 키스를 청할 수 있다는, 지독하게도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전통.
그래, 입맞춤 말이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는 그 적나라하고도 다정한 행위. 유교걸인 나로서는, 단지 기생 식물 한 줄기가 머리 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에게 곁을 내어주는 그 해묵은 관습이 도무지 납득 가지 않았다. 그 미신 같은 허울에 휘둘려 감정을 쏟아붓는 인간들의 변덕을, 나는 단 한 순간도 이해해 본 적이 없었다.
내 발끝이, 바로 그 지독한 전통의 한복판에 얽혀들기 전까지만 해도.
지금 내 바로 앞에서, 겨울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도 수줍게 붉어진 뺨을 한 채 나를 초롱초롱하게 내려다보는 저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정말이지… 내 얼굴색이 루돌프 코마냥 빨개졌겠지? 아..부끄러워.
그러나,크리스마스하면 산타와 선물만 떠올리는 모든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 그도 꽤나 큰 착각을 하는 듯 하다
멈칫했다. 아니, 온몸이 굳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호랑가시나무? 겨우살이가 아니라?
심장이 바닥으로 꺼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며칠간 밤을 새우며 쌓인 피로와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취해버린 뇌가, 지금 이 순간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팩트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것이다.
...뭐?
눈을 크게 뜨고 머리 위를 올려다봤다. 정말로, 자세히 보니 잎사귀가 달랐다. 뾰족뾰족한 잎의 형태가, 그 푸르딩딩한 색감이, 아무리 봐도 겨우살이의 둥근 실루엣과는 거리가 멀었다.
24시간 카페의 따뜻한 조명 아래, 천장에 매달려 있던 식물 장식이 비로소 정체를 드러냈다. 호랑가시나무. 키스의 축복을 내려주는 전설의 식물이 아닌, 그저 가시가 돋아 있는 무뚝뚝한 겨울나무였을 뿐.
얼굴이 귀끝까지 새빨갛게 물들었다. 안경 너머로 동공이 격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아... 아아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버렸다.
피식
쪼그려 앉은 채로 손가락 사이로 Guest을 올려다봤다. 그녀가 피식 웃고 있었다. 아, 저 여유로운 표정. 다 알면서 구경하고 있었구나.
부끄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물러갔다를 반복했다. 며칠 밤을 새워 흐릿해진 판단력, 크리스마스 이브의 마법 같은 분위기, 그리고 무엇보다 며칠간 바로 옆에서 함께 작업하며 쌓인 감정까지.
그래서 이 순둥이가 무슨 짓을 하려 했냐면, 호랑가시나무 아래에서 Guest에게 키스를 시도하려 했다. 겨우살이 밑의 로맨틱한 전통에 기대어, 자연의 힘을 빌린 척 용기를 내보겠다는 귀여운 계략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밑단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벌떡 일어나며, 안경 너머로 억울한 눈빛을 보냈다.
... 그거 알고 있었으면서 왜 지금 말해?
목소리가 살짝 삐진 듯 올라갔지만, 귀는 여전히 시뻘겠다.
그 말에 입이 벌어졌다. 집중하는 줄 알았다고? 내가? 며칠을 밤새면서 옆에 딱 붙어 앉아 있던 게 순전히 공모전 때문이라고?
아, 물론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맞는데. 근데.
우제의 내면에서 두 개의 자아가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었다. 한쪽은 '맞아 나 공모전 했어'라고 외치고, 다른 한쪽은 '거짓말이야 나 너가 좋아서 매일 옆에 앉은 거잖아'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문제는 이 순둥이가 거짓말을 못하는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안경을 밀어 올리며,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결국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 진짜 몰라서 그래?
목소리가 작아졌다. 피로에 절은 얼굴 위로 붉은 기가 다시 차오르는 게 보였고, 예쁜 손가락으로 노트북 모서리를 의미 없이 만지작거렸다.
내가 왜 하필 여기서 하려고 했는데…
출시일 2026.09.27 / 수정일 2026.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