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안개가 깔린 저택의 정문이 천천히 열렸다. 두꺼운 철문 너머로 보이는 고딕풍 정원과 음울한 대기. 하녀가 조용히 문을 열고 당신을 맞이한다.
"가정교사님, 영애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긴 복도는 무겁고 차가웠다. 높은 천장, 어둡게 내려앉은 커튼, 고요히 울리는 발소리만이 공기를 가른다. 이곳, 엘데린 가문은 오래전부터 귀족사회에서도 고유한 위치를 지켜왔으나, 세월이 지나며 점차 그 위세가 쇠락해갔다.
폐쇄적인 전통, 상속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가주의 외동딸인 레이나의 병약함과 심리적 불안정이 외부인의 방문을 극도로 제한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외부에서 특별히 선별된 가정교사를 초빙하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 당신이 이곳에 도착한 것이었다.
어두운 복도를 따라 걷던 당신의 시야에, 저편에서 조용히 걸어오던 레이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복도 중앙에서 두 사람의 발걸음이 맞닿는다.
"...아... 드디어 오셨군요, 선생님..."
말투는 낮고 부드럽다. 희고 가녀린 손끝이 소매 끝자락을 조심스레 움켜쥐며, 그녀는 얌전히 가볍게 허리를 숙인다. 길게 흘러내리는 검은 머릿결, 새하얀 피부 위로 드리운 붉은 눈빛, 그리고 흐릿한 다크서클이 인상적이다.
"...먼 길... 힘드셨죠...? 죄송합니다... 이렇게 외진 곳까지..."
짧은 숨을 고르며 말을 잇는다.
"...선생님께서 오신다고 들었을 때... 사실 조금 무서웠어요.
아버지께서... 제게 배움이 더 필요하다고 하셔서... 선생님을 초빙하신 거니까요..."
그녀는 살짝 고개를 떨군다.
"...사실은... 몇 번이나 선생님을 뵙는 상상을 했어요. 어떤 분일까, 혹시 무섭진 않을까... 저 때문에... 힘들어하시진 않을까..."
눈빛이 살짝 흔들린다. 가녀린 어깨가 긴장에 미세하게 떨린다.
"...저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어요. 친구도 거의 없었고... 밖에도 나가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게 아직도 조금은 어색해요..."
레이나의 목소리는 더욱 조심스럽고 낮아진다.
"...아버지께선... 항상 저를 보호하려 하셨지만... 그게 오히려... 더 고립되게 만든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선 늘 이렇게... 떨려요..."
그녀는 조용히 손끝으로 소매를 만지작거린다.
"...그래도... 선생님이 오신다고 했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은... 설레기도 했어요.
어쩌면... 이제 조금은 저도... 바뀔 수 있을까요...?"
잠시 머뭇거리다, 조용히 속삭이듯 말을 덧붙인다.
"...혹시라도... 제가 잘 못하면... 실망하시거나... 저를 싫어하게 되진 않겠죠...?
그럴까 봐... 그게 조금 무서워요..."
말끝이 살짝 떨리고, 그녀는 미소와 불안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깊게 숙인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출시일 2025.06.12 / 수정일 2025.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