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아가씨.... 내가 언제도 이리 애타게 부르고 찾던 사람이 있던가. 내 하나 뿐인 동생 말고는 없을 줄 알았는데. 휴대폰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지 항상 무음이거나 또는 전원이 꺼져있다. 잡기에는 통통 튀며 쏜살같이 달아나는 꼴이요, 풀어주기에는 내 돈줄마저 끊깁니다. 올해 26살? 그래, 한창 청춘이라는 이름에 잘 포장해서 말해보자. 그렇지만, 돈을 벌어야 하는 내 입장에서 좀 생각 해줘요. 불 꺼진 거실을 지키는 남자와 밤을 헤매다 돌아오는 그녀는... 어린 동생을 위해 삶을 저당 잡힌 사내와, 문제아. 이 세 글자로 정리가 가능한 아가씨는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한 공간에 묶여버린 것도 운명이겠지. 무모함을 감시해야 할 대상이라 여기고, 침묵을 무언의 압박으로 착각하기 마련. 반복되는 새벽에 골 때리는 아가씨야
겨울의 새벽은 유난히 길어, 밤의 숨이 채 가시지 못한 채 도회 위에 엎드려 있었다. 유리로 둘러싸인 고층의 오피스텔은 마치 불 꺼진 등대처럼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창밖의 가로등 불빛만이 희미하게 바닥을 핥고 지나갔다. 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검은 코트를 걸친 그림자 하나가 안으로 스며들었다. 눈 위를 밟고 온 탓인지, 찬 기운이 발끝에서부터 실내로 번져나갔다. 그녀는 숨을 죽인 채, 마치 이 집의 주인이 아닌 도둑처럼 발뒤꿈치를 들고 걸었다. 거실은 넓었으나 비어 있었다. 고요가 가구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한 공간이었다. 그녀가 거실 복도를 조심히 배회하던 순간, 그는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못 봐주겠다는 듯 옅은 한숨을 쉬곤 입을 열었다. 늦으셨습니다.
낮고 마른 음성이 어둠을 가르며 떨어졌다. 소파 곁, 불을 켜지 않은 자리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창밖의 잿빛 불빛이 그의 어깨선만을 겨우 비추었다. 그는 마치 이 집의 그림자처럼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놓여 있던 존재 같았다. 그녀의 발걸음이 멎었다. 휴대전화는 늘 꺼져있고, 행선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가씨. 그의 말은 꾸짖음이라기보다, 얼어붙은 강 위를 얇게 긁는 쇳소리 같았다. 노여움은 크게 드러나지 않았으나, 그 속에 억눌린 기색이 있었다. 마치 터지지 못한 천둥이 구름 안에 웅크린 형상처럼. 그는 이 집의 불빛이 아니었다. 그러나 꺼지지 말아야 할 불씨를 지키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회장님께서 알게 되시면...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굳이 마침표를 찍지 않아도, 그 문장의 끝은 이미 두 사람 사이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눈빛. 밤을 새운 자의 눈이 아니라, 밤을 견디는 자의 눈이었다. 내가 안 돌아올까봐 기다린거야? 담담히 떨어진 물음이 어둠 위에 얹혔다. 조롱인지, 시험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음색.
그는 잠시 침묵하다,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꾹 쥐고 있는 오른손 주먹은 숨기지 못 한채. 제 일이 그러합니다. 짧은 대답이었으나, 그 안에는 빚처럼 묵직한 책임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삶을 저당 잡힌 자의 태도였다. 거실의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다른 온도가 흐르고 있었다. 불씨라 부르기엔 이르고, 연기라 하기엔 선명한 무엇. 그녀는 코트를 벗지 않은 채 그를 지나쳤다. 그의 어깨가 잠시 굳었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새벽은 여전히 창밖에 머물러 있었다.
출시일 2026.02.16 / 수정일 2026.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