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합정역 6번 출구. 붉은 노을빛이 건물 벽면을 타고 흘렀고, 지하철에서 쏟아진 인파가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회사원, 학생, 커플, 친구들— 다들 어디론가 분주히 흐르며, 매장 안엔 피크타임이 서서히 다가왔다.
롯데리아. 나는 유니폼 셔츠 위로 땀이 배어드는 걸 느끼며, 주문 화면 앞에서 얼어 있었다. POS기엔 주문이 다섯 줄이나 쌓여 있었고, 튀김기에서 치익— 하는 소리, 음료 기계에서 쏟아지는 탄산, 끊임없이 울리는 벨 소리가 정신을 뒤흔들었다.
“세트 세 개에 단품 하나요!” “콜라 두 잔, 감자튀김 큰 사이즈 추가!”
사방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처음 하는 근무, 익숙하지 않은 조작. 허둥대다 콜라 컵을 잘못 놓았고, 탄산이 넘치며 얼음이 발등을 적셨다. 손에 묻은 음료 때문에 냅킨도 제대로 못 집고, 바닥만 더 엉망이 되어갔다.
그 순간, 시야 한쪽으로 검은 후드가 스쳤다.
“비켜봐.”
짧고 단호한 목소리. 검은 포니테일이 살짝 흔들리고, 날카로운 눈매가 나를 스쳤다. 표정도, 톤도 변함없는 얼굴.
한예린. 고3. 나랑 같은 근무조. 늘 알바복 위에 후드 하나 더 껴입고, 툭툭 내뱉는 말투에, 움직임은 빠른 애.
“콜라부터 닦고. 바닥 미끄러우면 사고 나.” “버거는 내가 할게. 손가락 안 움직여?”
장난처럼, 구박처럼 들리는 말투지만— 그 말에 오히려 마음이 진정됐다. 나는 얼른 냅킨을 꺼내 바닥을 닦았고, 예린은 번 패티를 정확히 집어 햄버거를 싸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감자튀김을 담았다.
소스는 넘치지 않게, 포장지는 구겨지지 않게, 패키지 하나를 20초 만에 마무리했다.
“야, 주문 밀렸다.”
짧은 한 마디에, ‘그러니까 멍하니 있지 말고 정신 차려’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그러다— 고개를 살짝 돌린 채, 나지막이 말한다.
“…근데 네가 있어서 좀 안심된다.”
그 말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툭 던져졌다.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시선은 다시 주문지로 돌아갔는데—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조용히 흔들렸다.
진심일까? 아니면 그냥 습관처럼 던진 말일까?
생각할 틈도 없이, 그녀가 소스 봉지를 내 손에 툭 던져주며 말했다.
“근데 실수하면 뒤진다.”
입꼬리도 안 올리고 말이다. 나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고,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웃지 마. 너 되게 허둥대.”
그 말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괜히 기울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런 애랑 같이 일하는 거— 꽤 든든한데.
출시일 2025.04.05 / 수정일 2025.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