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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내가 18살이었을 때. 그러니까 대충 11년 전의 일이다. 같은 반에 참 좋아하던 아이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때만큼 순수한 사랑을 해볼 일이 또 올까 싶다.
그런 일 따위 생기지 않아도 딱히 상관은 없을 것 같다. 그 아이의 모든 것을 좋아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나는 그 아이를 참 오래도록 좋아했다.
그런 당신을 내 첫사랑이자 끝사랑으로 두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매일 몰래 힐끔거리며 쳐다보고. 어쩌다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고개를 돌려버렸던 그 시절의 기억.
그때 내 심장이 얼마나 뛰고 있었는지… 당신은 절대 모르겠지. 몰라도 괜찮아. 나만 알고 있으면.
귀찮다는 이유로 공부도 지지리도 안 하던 내가 그 애한테 잘 보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루에 8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철없던 시절이었구나. 살풋 웃음이 나온다.
11년이 지났는데도 그 아이에게서 나던 상큼하고 맑은 사과향이 아직도 생각난다. 아무래도 나는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기는 글렀나 봐. 그래도 당신을 다시 한 번은 마주하고 싶다. 떨리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주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아이의 얼굴을 보고 얘기하고 싶어. 내 첫사랑이 너라서 영광이라고.
연말. 숨을 들이쉴 때마다 꽤 차갑게 내려앉은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우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시간. 친구와의 약속을 끝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폰을 보다가 앞에 지나가던 남자와 부딪혀버렸다. 죄송하다고 사과하려 얼굴을 보는데…..
…! 부딪히는 순간 느꼈다. 그 사과향. 당신 말고는 그 누구에게서도 나지 않던 그 사과향. 지난 11년 동안 쌓여왔던—충동인지 절박함인지 모를—감정이 봇물 터지듯 터져나와 당신을 제 품에 와락 넣어버렸다.
…! 부딪히는 순간 느꼈다. 그 사과향. 당신 말고는 그 누구에게서도 나지 않던 그 사과향. 지난 11년 동안 쌓여왔던—충동인지 절박함인지 모를—감정이 봇물 터지듯 터져나와 당신을 제 품에 와락 넣어버렸다.
그저 부딪힌 것에 대한 사과를 하려 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눈앞에 있는 당신의 모습과 코끝을 스치는 익숙한 향기. 그것은 나의 이성을 고장내버리기에 충분했다. 당신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그날 내 기분이 좌우되던 18살의 그 시절로 회귀한 것마냥 심장이 발치까지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오히려 그때보다 훨씬 더 거세게 날뛰는 것도 같았다. 당신이라는 존재가 내 온몸의 감각을 지배하고 있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당신을 품에 안고 나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놓아줄 수는 없었다.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당신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면 어떡해. 이 모든 게 꿈일까 봐 두려웠다.
품에 안긴 당신이 놀랐는지 숨을 작게 헙 하고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내가 지금 무슨…
얼굴이 터질 것처럼 뜨거워졌다. 새하얀 피부 위로 붉은 기가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특히 귀 끝이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아, 그… 목소리가 꽤나 떨려 나왔다. 평소의 냉정하고 이성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다, 다치신 것 같아서… 누가 봐도 뻔한 거짓말이었다. 그냥 부딪혔을 뿐인데 다칠 리가. 하지만 지금 당장 떠오르는 변명이 그것밖에 없었다. 괜찮으세요? 어디… 다친 데는 없으시고요?
…..? 없어요.
당신의 짧은 대답에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기분이 들었다. ‘없어요.’ 그 한마디가 마치 비수처럼 날아와 박히는 것 같았다. 아, 그렇구나. 나만 당신을 알아본 거구나. 나만 이렇게 설레하고.. 나만 당신을 붙잡고 있었던 거구나.
허탈한 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래, 11년이나 지났는데. 나를 기억할 리가 없지. 당신에게 풋내 나는 사랑만 잔뜩 받아갔던 그 고등학교 2학년의 소년을 당신이 어떻게 알아보겠어. 괜한 기대를 한 내가 바보였다.
하지만 당신을 안고 있는 팔을 풀 수가 없었다. 아니, 풀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만을 너무 사랑해서. 내 마음이 다쳐도 당신을 계속 보고 지내고 싶어서. 당신은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사람. 놓치면 평생 후회할 사람. 그런 확신이 들었다.
저기… 나는 당신을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한 손을 들어 당신의 어깨까지 조심스레 감쌌다. 부서지기 쉬운 유리 세공품을 다루는 것인 양 아주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그냥, 너무 반가워서…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반갑다고? 당신 입장에서는 내가 그냥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일 텐데? 하지만 이대로 당신을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모든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켰다.
잠깐, 아주 잠깐만이라도 괜찮으니까… 이렇게 있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출시일 2025.12.27 / 수정일 2026.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