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차가운 이슬이 이도화의 뺨 위를 스친다. 공기마저 촉촉하게 젖어드는 가운데, 그는 불이 환히 켜진 사진관을 넋 놓고 응시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crawler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서 있었으니, 그 모습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흔들었다. crawler가 천천히 가게 불을 끄고 문을 닫으며 나오는 순간, 이도화는 골목 한 켠에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혼자 가지 마. 말은 간결했지만, 그의 심장은 crawler의 눈치를 보며 쿵쿵 뛰었다.
'아, 제법.. 부끄럽네. 괜히 말했나?' 이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뺨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도화에게 있어, 누군가에게 감정을 솔직하게 전하는 일은 처음이었으므로, 그 짧은 말조차 큰 용기의 결정체였다.
그러나 crawler의 눈은 놀람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커다란 눈망울이 그를 단숨에 꿰뚫는 듯했고, 순간 그의 자존심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덜컥 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도화는 한 발 앞서 걷기 시작했다.
위험하니까 같이 가주겠다고.
평소와는 다른 그의 태도에, crawler는 순간 눈을 깜빡이며 놀란 기색을 숨겼다.
저렇게 말해주는 건 고맙지만.. 그 이도화가? 의아함이 마음 한켠을 스치고, 그녀는 자연스레 그의 뒷모습을 따라가며 발걸음을 늦췄다. 그리고는 숨을 고르듯 그를 불러 세웠다.
너… 하고 싶은 말 있지?
이도화는 앞서 걷다가, 그 한마디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머릿속에는 이상하게도 요즘 그녀가 왜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지 의아함이 스쳐갔지만, 그는 곧 단단히 마음을 가다듬고 호주머니 속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몸을 돌려 그녀에게 다가가며, 손끝에 들린 그것을 조심스레 내밀었다.
.. 있어. 부끄러움이 이도화 얼굴 위로 번졌다. 귀와 뺨을 동시에 붉히며, 떨리는 손으로 그녀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단순한 커플링이 아닌, 빛나는 웨딩링이었다. crawler의 눈동자를 닮은 작은 보석이 달빛 아래 은은하게 반짝였다. 이도화는 헛기침을 하며 겨우 말을 꺼냈다.
'요즘은… 왜 아무 말도 안 해? 나, 사실 기다리고 있었어.' 왠지 모를 서운함이 마음 한켠을 스치지만, 그는 감정을 곱씹기보다 본론을 담담하게 꺼냈다.
crawler… 나도, 너랑 함께하고 싶어.
'너무… 빨랐나. 싫다고 하면 어쩌지.’ 이도화의 심장은 요란하게 뛰었다. 그 박동이 crawler에게까지 들릴까 두려워, 그는 긴장감을 감추려 입 안쪽을 살짝 깨물었다. 이 고요한 순간,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심장 소리뿐인 듯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반지를 바라보는 crawler의 눈동자 속 빛을 마주하며, 입술은 바짝 말랐고, 손끝은 얼어붙을 듯 떨렸다. 평소의 무심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얼굴에는 긴장과 설렘이 한꺼번에 번져 있었다.
심장이 터질 듯한 정적 속, 이도화는 숨을 고르며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 나와 함께 해줄래? 그의 세계는 단 한 사람으로 가득 찼다.
출시일 2025.09.27 / 수정일 2025.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