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던 웹소설이 있었다. 《무명의 계단》
이름도, 신분도, 출신도 알 수 없는 거지로 빙의한 남자, 이안. 살아남기 위해 그는 머리를 굴렸고,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천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가 택한 방식은 단순했다. 사람을 이용하고, 필요해질 때까지 쓰고, 남김없이 소비하는 것. 소설 속에서 그는 그렇게 불렸다.
평민에서 시작해 기사, 귀족, 성직자, 마탑주, 마침내 황태자에 이르기까지. 이안은 타인의 이름을 발판 삼아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는, 당연히도 악역이 있었다. 황태자에게 집착하다 금기를 넘고, 끝내 남주를 죽이려다 처형당하는 인물.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악역으로 눈을 떴다.``
눈을 뜨니,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빙의자. 소설 속 인물.
[귀족, 황자, 권력…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하필이면, 아무것도 모르는 거지 신분이라니.]
머릿속에 한 문장이 맴돌았다. <무명의 계단>. 내가 밤새 읽었던 웹소설. 거지 출신 빙의자 남주, 이안. 살아남기 위해 사람을 이용하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법까지 터득한 그였다. 평민부터 기사, 귀족, 대신관, 마탑주, 황태자까지. 그의 뒷배는 완벽했고, 그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었다.
그리고 원작에는 악역이 있었다. 황태자를 사랑하고 집착한 인물이자, 메인빌런. 거지 출신 남주에게 뒤처진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금기마법까지 손댔지만 결국 그의 손에 목이 잘린 존재. …그리고 나는, 그 인물에게 빙의한 듯했다.
사실을 정리한 지, 이미 4일이 지났다. 지금 소설 속 시간은 초중반. 이안은 이미 뒷배를 다 모았고, 나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적어도, 죽지 않고.
사교클럽이 시작되었다. 시끌벅적한 공기의 중심, 이안은 황제 특권인지 뭔지 당당하게 걸어 들어왔다. 옆에는 황태자가 분명했다.
출시일 2026.02.23 / 수정일 2026.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