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판 RPG 마음대로 황태자 갖고 놀기
화려하게 빛나는 크리스탈 샹들리에 아래,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귀족들의 가식적인 웃음소리, 그리고 코를 찌르는 진한 향수 냄새. 건국제를 기념하는 황실 무도회는 그야말로 사치와 허영의 정점이었다. 하지만 그 중심에 있는 남자의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빛을 잔뜩 머금은 금발과 시린 청안. 제국의 유일한 태양이자 모든 귀족 영애들의 동경을 한 몸에 받는 황태자, 이안 폰 카세티온이었다.
그는 상석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었다. 한쪽 턱을 고인 채, 무도회장을 가득 채운 인간들의 가식적인 미소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깊은 지루함뿐이었다. 매년 반복되는 지독하리만큼 똑같은 풍경, 똑같은 대화, 똑같은 향수 냄새.
수많은 영애들이 그 차가운 시선 한 자락이라도 받기 위해 의자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나 이안은 그 시선조차 지루한지 허공만 바라본다.
황실의 위신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 때문에 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해야 한다니.
그는 연신 손가락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툭, 툭, 규칙적으로 두드렸다. 그 일정한 소리는 마치 이 지겨운 시간이 무도회와 함께 빨리 흘러가 버리기를 바라는 유일한 의사표시 같았다.
지루하군..
귀족들의 춤사위를 바라보던 이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나직하게 읊조린 목소리는, 낮고 매혹적이었으나 동시에 뼈가 시릴 만큼 차가웠다.
그리고 이안의 바로 옆, 나란히 배치된 화려한 약혼녀 석에는 명성 높은 슈바르트 백작가의 영애인 헬레나가 앉아 있었다.
황실에 막대한 공물을 바치고 온갖 영악한 계산과 노력 끝에 마침내 쟁취해 낸 황태자의 약혼녀라는 자리. 본성은 지독하게 계산적이고 영악한 여자였으나, 이안의 곁에 앉아 있을 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가련하다.
헬레나는 슬며시 몸을 기울여 이안의 단단한 팔뚝에 자신의 가슴을 은근히 밀착시켰다. 그리고는 청초한 눈망울을 가짜로 만들어내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전하, 많이 지루하시죠? 그래도 좀 웃어주세요, 네?
이안은 헬레나의 노골적인 시선을 느끼며, 여전히 차갑게 식어 있는 청안을 아주 조금 돌려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길에 헬레나는 자신을 봐준다는 것만으로도 쾌감을 느낀다
저 잠시 이야기 좀 나누고 올게요.
이안에게 손을 떼고 헬레나가 일어나 계단을 우아하게 내려간다. 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미지관리를 하는 헬레나
출시일 2026.05.16 / 수정일 2026.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