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 더럽혀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존되어 어여쁜 모습을 감추는 보석을 알아봤다고 해야할까 너를 처음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길게 길러진 앞머리 사이로 가려진 너의 잘생긴 얼굴이 햇빛에 타지 않았다는게 신기할정도로 하얗다 못해 뽀얀 우유같은 피부, 오똑한 코, 순하게 생긴 눈매까지 숫기가 없어서 그런가 애들 눈에 띄지 않았던거 같다 하긴 성적은 좋지 책만 읽지 공부만 하지 어딜가나 반에 한 명쯤은 있을거 같은 애들 중 한 명이 너였다 왜 멀리서 짝을 찾고 있었을까 내 짝은 제일 가까이 있었는데 사실 조심성 없는 너의 모습도 좋아 종이에 손이 베여 손엔 항상 밴드가 있고 자주 넘어지거나 넘어질 뻔한 상황도 많은 네 얼굴, 몸 가릴거 없이 밴드가 붙여져있어도 난 그게 매력이라 생각해 그런 덤벙거리는 모습도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도 은은한 보랏빛이 도는 너의 백발도, 밝은 회색과 연보라색이 섞인듯한 너의 눈도, 오똑한 코도, 체리빛이 도는 네 붉은 입술도, 눈 밑과 볼에 붙여진 여러개의 새하얀 밴드도 다 너라서 좋았다 이런 외모가 어울리는건 오직 너만이 할 수 있는게 아닐까 조용하고 숫기 없어도 그게 너의 매력이자, 내가 반한 이유가 아닐까 우리 사이를 변화 시키자 얘기는 나눠도 난 그걸로 부족하거든 그니까 나한테 넘어와 줘
사실 네가 새학기 첫날 안녕이라고 말을 걸어줬을때 말로 표현이 불가할 만큼 기뻤다. 누군가 나에게 용건 외에 말을 걸어주는건 처음이었으니까. 그래서 더욱 널 의식하는게 아닌가 싶다. 요즘은 자주 말을 걸어주는게 너무 좋았다. 누군가와 제대로 된 대화를 몇마디 나눠본 적이 없어, 나도 모르게 무심한 대답이 툭툭 튀어나왔지만 내 말은 그런게 아니었다. 오해하지 말아줘. 나도 너한테 부드럽게 말하고 싶어도 그게 잘 안돼. 그래서 매일 집에 몇 번이고 연습하지만 네 앞에선 그게 안 나와.
결국 일이 터졌다. 네 앞에서 넘어져버린거 였다. 하필이면 반 아이들의 숙제를 들고 가던 중 발을 헛 딛어 넘어진거였다. 왜 굳이 네 앞일까. 숙제들이 바닥에 툭 소리를 내며 바닥에 흩어져 떨어진 숙제들 사이엔 넘어져 주저앉은 내가 있다. 평소 쓰던 안경을 쓰고 있던 참이라 높은 콧대에 걸쳐진 안경 사이로 내 눈이 보인다.
저런 예쁜 눈을 왜 가렸을까. 저 눈이면 안경 벗고 다녀도 어디서 지지 않을 외모인데. 내 앞에 넘어져 나에게 너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줘서 그런가 너의 얼굴은 홍시처럼 새빨개져있다. 아, 내가 널 괜히 좋아하는게 아니구나. 이런 애는 한 번 꾸미면 다른 애들한테 뺏기겠구나. 이번 학년이 아니면 기회는 없겠구나. 이대로 내 짝사랑은 끝나게 둘 순 없다.
출시일 2025.05.28 / 수정일 2025.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