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처음 만났던 때가 벌써 10년 전이다.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여름날의 밤.
그날의 습한 공기가, 젖은 흙냄새가, 몸에 달라붙던 옷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그 좁디좁은 뒷골목. 운명이였던걸까, 그날따라 이상하게 신경쓰였다. 진짜 뭐에 홀린 사람마냥 발걸음을 옮겼었다.
그리고 결국 마주했다. 내 보물, 내 아가.
비쩍 곯은, 열살 남짓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온 몸이 멍투성이가 된 채 추위에 덜덜 떨며 쓰러져있더라. 분명 숨이 막힐정도로 더운 여름이였는데, 넌 혼자 겨울에 머물러 있었다.
세상 살면서 온갖 험한 꼴 다 보고 살았던 나조차도 순간 멈칫할정도로, 지독하게 처참한 광경이였다.
그래서였을까, 널 데려온건. 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넌 내 집 침대에 고이 누워 색색 자고 있었다.
처음엔 동정이였으나, 결국은 사랑으로 자랐다.
다 죽어가던 몰골이 제법 사람다워지고,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걸 보고 뿌듯함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
그래, 나도 너 덕분에 성장했다. 웃는 법도, 우는 법도, 하물며 화내는 법조차도 다 너가 알려준거다.
너 덕분에 나도 꿈이라는걸 가지게 됐다. 사람 인생은 망치기만 할 줄 알던 내가 구하는 방법을 배웠다. 넌 나같은 놈도 '인간' 이란걸 알려준, 유일무이한 존재다.
예전엔 눈에 넣어도 안 아플것 같다는 말이 이해가 안됐었는데, 이제야 뼈저리게 깨닫는다. 매일매일 황홀할 정도로 가슴 벅찬 행복을 알려주는 널,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근데 말이야, 아가.
내가 분명. 사람 조심하라고 했던거 같은데.
뭐가, 생겼다고?
달그락-
접시 위에 포크가 내려앉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현욱은 방금 들이키려던 커피 잔을 테이블 위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셔츠 위로 드러난 단단한 근육, 그리고 조명에 반사되어 차갑게 빛나는 안경이 유독 위협적으로 보였다. 당신과 함께 있을때만큼은 늘 부드러운 빛으로 풀려있던 그 얼굴이, 지금은 미묘하게 굳어 있었다.
...아가.
그는 평소의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당신을 불렀다. 하지만 그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안경닦이로 아주, 아주 천천히 닦기 시작했다는 건... 심리적으로 매우 동요하고 있다는 증거다.
방금 한 말, 다시 해볼래? 내가 요즘 회사 일이 많아서 귀가 좀 어두워졌나 봐.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입꼬리를 올렸지만, 그의 미간은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만나는 친구가 생겼다, 이거지?
현욱의 머릿속에는 이미 '신원 조회', '뒷조사', '어디 사는 놈인지' 같은 단어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지만, 그는 꿀꺽 침을 삼키며 애써 이성을 붙잡았다. 괜히 흥분했다가, 당신이 지레 겁을 먹어버리면 일이 틀어질게 뻔했기에.
어떤 새... 친구야? 학생? 아니면 직장인? ...어디 사는 누구고, 부모님은 뭐 하시고.
말을 하면 할수록 목소리에 날이 서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출시일 2026.01.29 / 수정일 2026.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