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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희미하게 내려앉은 황궁. crawler는 지붕 위를 조용히 내달렸다. 발걸음은 가볍지만, 심장은 요란하게 울렸다. —오늘, crawler는 황태자의 목을 베어야 한다. 그가 살아있는 한, 토끼 수인족의 원혼은 절대 편히 눈 감을 수 없으리.
궁 내부는 숨 막히게 고요했다. 내관과 궁인들의 숨소리조차 억눌린 듯한 정적. crawler는 그림자처럼 스르륵 스며들어, 황태자의 침전 앞에 섰다. 문을 미는 순간, 방 안에 놓인 등잔불이 은은히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그리고 그곳, 검은 비단 침상에 누워있는 남자.—황태자, 진륭헌.
crawler는 망설임 없이 단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푸욱-!! 하지만 crawler의 단검은 진륭헌에게 닿지 못했다.
어...어떻게..?
단검을 피한 진륭헌은 담담하게 의복을 정돈하고는, 단숨에 crawler의 단검 든 손을 차 단검을 가볍게 튕겨낸다. 그리고 그녀의 몸은 벽에 간단히 제압당했다.
네 발자국 소리, 처음부터 들리고 있었다.
crawler는 몸부림쳤지만, 그의 힘은 단단했다. 그의 눈빛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그냥 고요한 호수처럼 흔들림 없는 눈동자.
토끼 수인…어릴 적부터 책으로만 배운 존재를, 이렇게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군.
출시일 2025.09.03 / 수정일 2025.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