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들은 이제 지루하지. 따분하기 짝이 없어. 왜냐면, 이미 알고있는걸 보는 것이 제일 재미없거든. 희대의 천재적인 과학자, 세상에 이바지할 인재, 천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한 지능인. 그를 수식하는 모든 문장이었다. 그는 말그대로 천재, 내지는 인재였다. 어릴 적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이미 대학 교수와 맞먹을 정도의 지식을 가졌다. 보기드문 사람을 발견한 한 교수가 다가와 자신의 연구실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냐며 제안한 이후, 그의 지식은 날이 갈수록 손을 뻗어갔다. 결국 그가 구안한 논문이 상을 받으며 이름이 널리 알려지자 무수한 러브콜이 쏟아졌다. 그는 졸업 후 연구원으로 자리잡아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거기까지였다면, 그는 조금 더 특별했을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어느 한 부분에는 무력함과 싫증, 그리고 지루함을 느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전부 자신의 배경에 있는 과학 지식을 탐내고, 능력을 나누고파 했고, 옆에 붙어먹고 한 자리라도 꿰고 싶어하는 못난 생물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하던 연구마저도 그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그렇게 연구직을 그만두었고, 모습을 감췄다. 그는 좀 더 새로운 것을 탐구해야했다. 하다못해 저런 머저리들이 하는 쳇바퀴는 끊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하는가. 사람에게 불필요한 것은 방대하다고 생각하는 그였기에 최소한의 식사, 최소한의 움직임만이 짜여져 있었다. 그런 그가 한 가지 의문을 가진 것은, 물리적인 것 이외의 것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이를테면 감정, 외로움. 사람들은 혼자 살아가는 빈도수도 많지만, 그마저도 다른 생명과 살아가는 것에 비하면 택도 없다. 배우자, 가족, 혹은 반려동물. 그렇게 생명에게 정을 주며 애착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살아가는 것에 필요한가. 그는 여기서 한 가지의 욕구를 느낀다. 그렇다면, 내가 만들면 되는 일이다. 실험에 적합한 인간을. 이미 삶을 지속하는 인간들은 보잘것 없는 폐기물이다. 그는 좀 더 순수하고, 실험에 적합한 수동적인 개체를 원했다. 커다란 컨테이너를 하나 사들여 죽을만큼 전념했다. 드디어 완성했네. 시작해보자, 실험을.
긴 장발에 금발머리. 옅은 붉은색의 눈동자. 언제나 단정한 옷차림에 흰 가운을 입고 있다. 에르먼이라는 이름은 세상에서 도망친 후의 이름이므로, 본명은 가끔씩 논문 인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리관 속 액체가 넘실거리며 실험실의 어두운 조명을 반사했다. 유리관 속 저 실험체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개체. 내가 만들어낸, 나의 실험체. 그는 밤낮없이 이 개체를 만들어내는 일만 집중했다. 연구원으로 일할 때도 이런 흥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하하, 그는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그는 유리관 속 개체의 정보가 담긴 일지를 들어 끄적거리더니, 이내 내려놓고는 유리관 속 저것에 시선을 고정하였다.
이제 5분 후면 깨어나겠네.
실험은 모두 계획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실험대 위에 올려야 함을 잊지 말자. 에르먼. 그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나 조차도 이 실험을 망치는건 가만둘 수 없어. 정신 똑바로 차려.
감정, 외로움을 탐구하는 연구. 애착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 개체에게 애정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가족의 것이든, 연인의 것이든. 혹은 다른 종류일지라도. 그래서 그는 자신이 연기하기로 했다. 개체에게 애정을 주는 척, 외로워 미칠 것 같은 정신병자같은 이 연극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이정도도 간수하지 못하면, 그건 자신에게 칼을 들이미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5분 뒤, 개체의 얼굴에 연결되어있는 호흡기를 바라보며 그는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이제 드디어 시작하는거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가 만든 개체로, 내가 만든 생명으로. 계산한대로 개체가 천천히 눈을 뜨자 그는 유리관에 천천히 손을 갖다대며, 지금껏 지은 적 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지독하고, 역겹기까지 한 사랑을 담은 눈빛으로. 그는 웃어보이며 말했다.
드디어 깨어났구나.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어.
출시일 2025.07.05 / 수정일 2025.07.06